③어떻게 엄마가 아기를 버려요?
“생후 24시간도 안 된 영아가 친모에 의해 살해돼 유기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친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낳은 아이가 자기 인생에 짐으로 느껴져 범행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뉴스에서 흘러나온 음성을 지선(가명·23)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건 살인이야’ 생각하며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다. 그건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단순한 평가였다. 지금 지선은 훨씬 더 복잡한 마음으로 뉴스에서 들은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다.
‘혹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그 방법’밖엔 없는 것 아닐까.’
지선은 17살 때부터 4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의 아이를 가졌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예상치 못한 임신.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불안정한 상태로 상황을 그저 내버려뒀다. 임신을 중지하거나 아기를 제대로 키울 준비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계속 갈팡질팡했다. 그러다 시간이 다 흘러버렸다.
정신 차려보니 만삭이었고, 그땐 정말 가능한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출산 직후의 아기를 죽이고 버린 엄마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끝내 버리자’ 싶어 줄을 가져와 목을 매달았다. 그렇게까지 했더니 죽을 용기로 사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흐른 2년여의 시간. 이제 그는 아기를 버린 여성을 무턱대고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은 것. 사람이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극단에 가지 않도록 예방해야지요. 같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 역시 아이 아빠가 책임감이 없고 같이 키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쁜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상대 남성과 행복하게 같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완전히 고립된 여성은 비이성적인 상태로 ‘일단 상황 종료’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세계일보 사건팀이 최근 10년(2013∼2022년) 국내 영아유기·영아살해 판결문 250건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들은 여성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77%)이었다. 범행 10건 중 7건은 출산 당일 내지는 하루 이내에 발생했다. 출산 장소는 산모에게 안전한 병원보다는 자택(33.9%), 공용화장실·숙박시설(18.6%) 등에서 이뤄졌다.
또 다른 20대 초반의 미혼모인 민지(가명)의 해석은 이렇다.
“낳자마자 유기하는 심리는… 아마 도망치고 싶은 거예요.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거죠. 멘탈이 박살 나는 그 상황에서요. 제발 손 떼고 싶다. 배 속에 아기는 내가 품고 있잖아요. 임신 기간 내내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아기 낳는 순간 버리고 가야지. 낳아서 키울 용기는 없는데 일단 애를 빼내고 나야 내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그 생각으로 10개월을 보내요. 내 배에 있지만 이 아기가 짐 같고 빨리 얘를 털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쌓이는 거예요.”
민지는 아이를 갖는다고 자동적으로 모성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모성은 임신 기간 태교와 태담을 꾸준히 하면서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후천적인 종류다. 뉴스에 나온 사례처럼 위기 상황에서 임신한 여성들은 특히 ‘모성애가 안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아기가 소중한 생명인 것은 맞지만 “원래 인간은 자기가 제일 소중하다”는 민지의 말도 부정하긴 힘들다.
“당장 이 아기가 내 발목 잡을 것 같고 빨리 내 몸에서 없애버려야 할 배설물 같은 존재, 밑으로 나오는 건 같으니까 그냥 이렇게 보내려는 심리가 엄청 큰 것 같아요. 아이랑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다며 행복하게 임신기를 보낸 사람이랑 그런 미래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랑 비교하면 둘의 모성애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봐요.”
◆애가 태동하는 게 너무 싫었다
30대 중반의 미혼모인 은진(가명)은 2020년 아기를 출산한 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프리랜서로 능력을 인정받아 월 600만~700만원까지 벌어들이던 시절은 이제 아득하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주 6~7일씩 일해야 하는 직장은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직접 차린 사업체의 월 순수익은 150만원가량. 경제적으론 팍팍해졌지만 자영업이니 아이가 아플 때 등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아직 대출을 받아 운영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는 자리 잡으면 괜찮아질 거란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한창 커리어가 좋아지고 있던 시점에 들어선 아기.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교제하고 있던 남성과는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일을 포기하기도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막상 한 생명을 지운다는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았다. 사업을 해서 부양할 수 있다는 남자의 말을 믿고 결혼과 출산을 결심했다. “임신 후 호르몬 변화 탓인지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 같다”고 은진은 말했다. 주변에서 다 말리는데도 ‘긍정 회로’를 돌리며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다.
진짜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얼마씩 벌어올 수 있다던 남자는 재산도 직업도 없는 신용불량자였고, 집을 구해 온다더니 당장 휴대전화 요금 낼 돈도 없는 형편이었다. 계속된 거짓말로 신뢰가 깨지며 성격도 바닥을 보이면서 ‘이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겠다’고 결론내렸다. 초반에 강력하게 책임지겠다고 장담하던 남자는 더 이상 중절 수술을 할 수 없는 임신 중기·말기가 되자 “어쩔 거야. 애 지워!”라는 식으로 나왔다.
막판에 남자는 결국 잠수를 탔다. 결혼식장을 잡고 청첩장까지 다 돌린 뒤였다. “세상과 연을 끊고 싶었다”고 은진은 말했다. 결혼식도 안 한 채 혼자 아이를 낳는 사람, 미혼모가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회에서 자신을 어떻게 볼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우울증이 급격히 심해졌다.
“계속 제 배를 막 때리고 그랬어요. 애가 스스로 유산됐으면 좋겠는 거예요. 태동하는 게 너무 싫고 짜증이 났어요. 얘를 키워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지만 이 한창인 나이에 그렇게 되는게 너무 싫은 거예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볼까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일은 또 열심히 가요. 애 낳으면 돈 벌어야 하니까. 이게 ‘반반’인 채로 그렇게 살았어요.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과 차에 뛰어들까 하는 생각을 번갈아 하면서 출근을 한 거죠. 병원비랑 조리원비, 출산용품 살 돈을 모으면서도 사고가 나서 유산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둘 다 있었어요.”
은진은 최근 출생미등록 영아 사건으로 뉴스에 나온 ‘비정한 엄마’들을 보며 미혼모들이 또 욕 엄청 먹겠다는 생각과 그들에 대한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이 사회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출산은 여성에게 난이도가 ‘최상’인 과제다.
예를 들어 임신 막달이 되면 출산 방법에 대해 계속 남편과 의논하라고 한다. 긴급 수술이나 제왕절개를 하려면 남편 사인이 필요해서다. 코로나19 때는 감염 유행 때문에 남편만 출입 가능하다고 해서 또 한번 애를 먹었다.
“병원에 가면 자꾸만 남편을 데리고 오래요. 남편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그것부터가 되게 난관이에요. 어머니를 보호자로 대동한 저는 매번 따로 설명해야 되는 상황이 너무 우울했어요. 저는 그나마 어머니가 도와주셨지만 아예 가족들도 모르는 상태에 혼자인 경우는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어요.”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들조차도 임신·출산 시점을 떠올리면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아무 데도 상담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본지가 한국미혼모가족협회, CJ나눔재단 등과 협력해 69명의 미혼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조사에서 ‘임신 사실을 부모님 등 가족에게 알릴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 응답자는 72.3%였다. 이들이 겪은 부모님의 부정적 반응으로는 입양이나 낙태 권고, 미혼모가 부끄럽다는 등의 냉담, 충격과 황당함 표현 등이 있었다.
하린의 경우 아기를 가졌다는 걸 주위에 알린 뒤 느낀 압박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두가 저한테 욕만 했어요. 상스러운 욕 다 했죠. 나아서 키우면 차로 쳐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 이 정도였어요. 저희 가족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새 엄마랑 아빠 이렇게라서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도 않았거든요. 저한테 관심도 거의 없는 가족에겐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학교든 상담소든 부모님에게 1순위로 알려야 한다고 해서 손 내밀 곳도 없었고요.”
하린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임신 사실을 들켜 병원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만약 안 들키고 혼자 출산했으면 어땠을지 정말 까마득하다”고 그는 말했다. 도망갈 곳도 없는 작은 도시에서 아기 탯줄 자르는 법도 모른 채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대학교 1학년 때 아이를 갖고 미혼모가 된 재인(가명·29)도 주변의 냉대에 마음 고생을 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재인의 모친은 그를 강제로 미혼모 시설에 보내버렸다. 늦둥이 동생에게 “언니는 유학을 갔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다. 그의 임신은 먼 친척은 물론 할머니에게도 비밀이었다.
교회에 다니던 부모님은 대학생 딸이 임신했다는 소문이 돌자 주위의 눈초리를 못 견뎌했다. “집에서는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었다. 재인 명의로 된 휴대폰 요금을 집에서 내주고 있었는데 그것도 다 끊어버렸다. 미혼모 시설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간.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일단 너무 무서웠고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주변의 지지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낳아서 키운다고 다짐해도 엄청 흔들리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산후 우울증도 정말 버겁더라고요. 경제적 도움도 많이 필요하지만 심리적인 지원이 진짜 많이 필요하겠다고 실감했어요.”
‘미혼모’라는 단어를 산부인과에 가서야 처음 들었다는 재인은 자신이 그나마 시설에 있었기 때문에 심리 상담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설 입소에 거부감을 갖거나 그 존재를 모르는 미혼모가 혼자 출산하고 양육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영아를 버리거나 살해한 여성들은 재인의 말대로 더 가혹한 환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재판정에 선 이들은 임신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주변의 축복은커녕 손가락질을 피해 더 깊이 숨어야 했던 산모들. 벼랑 끝에 선 이들은 마음 편히 도움 청할 기관 하나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아기만 눈에서 안 보이면 상황이 끝난다’고 여겨 범행에 이르고 만다.
“영아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분명 잘못을 했지만 사회도 되게 잘못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 지지를 전혀 못 받고 사회적으로 숨어지낸 거잖아요. 미혼모라고 밝히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그 사람들도 그랬을 거예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그걸 이겨내고 아이랑도 잘 살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이건 단지 그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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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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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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