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2심 재판에서 ‘유재수 감찰 무마 혐의’가 무죄라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사실관계와 다르고 조 전 장관과의 친분에 따라 개인 의견을 밝힌 것”이라며 동의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전직 대통령이 사실상 조 전 장관 구명운동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 법조계에선 이례적이란 말도 나온다. 지금까지 자신에 대한 수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들이 법정에 의견서를 제출한 적은 있어도, 개인의 친분에 따라 법원에 무죄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적은 드물다.
16일 서울고법 형사 13부(김우수 김진하 이인수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조 전 장관에 대한 2심 공판에서 조 전 장관 측은 문 전 대통령 개인 명의 사실조회 회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문서에서 “특감반이 비서관, 수석비서관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감찰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것은 특감반의 설립 취지에 반한다”며 “감찰 시작과 종료, 처분에 대한 판단과 결정 권한은 모두 민정수석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즉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 시장에 대한 감찰 종료가 민정수석이던 조 전 장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어서 감찰반원의 의사에 반해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조 전 장관의 무죄 주장과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정치권의 구명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부당하게 중단시켰다고 판단했다. 특히 특감반이 감찰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감찰이 중단됐다는 점에 주목해 특감반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하고 날인한 것이냐, 아니면 (조 전 장관 측이)작성해서 보내준 의견서를 읽어보고 날인한 것이냐”고 물었다. 변호인이 “직접 작성하셔서 보내준 것”이라고 하자 검찰은 “법률적 의견을 피고인과 개인 친분에 따라 밝힌 것으로, 형식이나 내용에서도 직접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장이 사실조회 신청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런 질의회신서라는 편법적 형태로 다시 전직대통령 진술서를 현출시키는 데 대해 재판장이 어떻게 볼지 좀 그렇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처음있는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당시 재판에 참석하지 않고 법정에 제출된 증거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법원에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들의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당초 박 전 대통령측은 대기업 총수들의 검찰 진술 조서에 대해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후 입장을 바꿔 법원에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전에도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뇌물·횡령·조세포탈 등 16가지 혐의로 기소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검찰 측의 증거에 동의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즉 전직 대통령들의 의견서 제출은 대부분 자신의 사건에 대한 검찰 측의 증거 동의에 국한돼있다.
이번 사안과 같이 사실상 유무죄의 주장이 담긴 의견서를 제출할 경우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행여나 법원이 다른 판단을 했을 경우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자기 사건에 대해 증거에 대한 의견 동의는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면서도 다른 사건에 대해 이처럼 개인적인 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외에도 활발하게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현실 정치에 돌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10·4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기념해 페이스북에 “대립이 격화하는 국제질서 속에 한반도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고 대화의 노력조차 없어 걱정이 크다”며 윤석열 정부의 강경대북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해선 “깊은 우려를 표한다. 숙고해주기를 바란다”고 했고, 단식 중인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하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전라북도의 세계잼버리대회 준비 부족과 관련해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만이 현재 생존해 있는 3명의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SNS를 통해 활발히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이 개인의 표현 자유를 넘어 지지층에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