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부 설명 불충분” 의구심
“복구 지연 데이터 지도 부재 탓” 지적
일부 행정복지센터 민원 몰려 혼잡
대부분 온라인 익숙지 않은 어르신
“평소처럼 번호표 뽑고 서류 발급돼”
“오늘은 서류 발급되는 거 맞죠?”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새올’이 마비됐다가 사흘 만에 복구된 20일 낮 12시30분쯤. 경북 영주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선 한눈에 봐도 평소보다 많은 민원인이 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지난 17일에 센터 내 곳곳에 붙었던 ‘업무 일시 중지’ 안내문은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 지나 다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센터를 찾았다는 40대 직장인 유모씨는 “시간은 평소보다 조금 더 걸릴 것 같지만 서류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전국 각지의 행정관청에서는 사흘 만에 민원 창구와 무인 발급기 등에서 모든 서류 발급이 정상적으로 재개됐다. 꼭 필요한 행정 서류를 발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민원인들은 서비스가 정상화되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평소보다 민원인이 많이 몰린 일부 행정복지센터 등에선 또다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새 나왔다. 정부가 장애 원인을 지목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설명이 충분치 않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명확한 원인 아직까지 몰라
앞서 행정안전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새올의 인증시스템 중 하나인 네트워크 장비 이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네트워크 장비 내에 정보를 주고받는 ‘L4 스위치’에 이상이 생겨 사용자 인증절차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사용자인 공무원들이 시스템에 접속하지 못해 민원 서류 발급 업무가 중단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L4 스위치가 왜 이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L4 스위치 문제는 크지 않다”며 “라면박스 두세 개 크기의 네트워크 장비인데, 처음부터 그게 원인으로 확인됐다면 그것만 교체하고 리부팅하면 끝”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원인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전 국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인을 여러 군데서 찾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부연했다.
김형중 호서대 디지털금융학과 석좌교수도 “L4 스위치만의 문제였다면 1~2시간이면 해결됐을 텐데, 이렇게 오래 걸렸겠나”라며 “네트워크에는 L4 스위치, L2 스위치를 비롯한 여러 장비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정부가 또 인증 서버 시스템도 업그레이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충돌했을 수도 있고,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단순 장애가 아니고 복합 장애라고 보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평일에 진행한 탓에 문제가 어디서 생겼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원인을 파악하고 복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쉽게 말해 ‘데이터 지도’가 없기 때문”이라며 “국가 데이터 지도가 있었다면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바로 ‘여기서 막혔으니 고치라’고 하면 되는데 어디서 막혔는지도 파악하기 힘든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복구에 투입된 인력이 역으로 데이터 지도를 만들어낸 건데, 이렇게 땜질식으로 대응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또 문제가 터질 수 있다”며 “데이터를 제대로 관리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교수는 “앞으로 가장 중요한 건 ‘회복력’(리질리언스) 문제”라며 “(다시) 셧다운이 안 일어나면 가장 좋겠지만, IT분야에선 그러기가 힘들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셧다운이 발생했을 때 이용자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 먹통이 되는 시간을 단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분한 분위기 속 불안감도
전국 대다수 행정관청에선 우려했던 것보다 민원인이 몰리지는 않았지만, 일부 행정복지센터 등에선 혼잡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 인천 남동구청 1층 민원창구에는 행정 서류를 떼려는 구민이 평소와 비슷한 10여명이었다. 대부분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었다. 무인 발급기도 정상 운영 중이었다. 연수구청의 상황도 비슷했다.
대전 둔산1동행정복지센터에는 지난 주 금요일 오전에 업무용 서류를 떼러 왔다가 허탕을 쳤다는 한 신용정보회사 직원 김모(60)씨를 비롯한 민원인 20여명이 북적였다. 개명허가 신청을 하러 왔다는 한 60대 여성은 “급한 일은 아니지만 지난 주에 서류 처리를 하러 왔다가 못해서 오늘 부랴부랴 왔다”며 “20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사태 재발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경기 성남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최모(54)씨는 “은행에 제출할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러 왔는데, 평소처럼 번호표를 뽑고 대기 없이 10분 안에 서류가 나왔다”며 “당장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언제든 또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여권 갱신을 위해 성남시청 민원실을 찾은 강모(48)씨는 “연말에 가족여행을 가려고 준비 중인데 이번 일로 발급 순서가 밀릴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