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 교육·놀이치료 적합한데
일반 수감자처럼 약물치료 일관
치료 더디면 형량 이상으로 가둬
발달장애인법 개정안 1년째 표류
경북 영천시 한 마을에서 교회 목사 및 마을 사람들 80여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허위 신고가 6회에 걸쳐 접수된 건 2018년 가을이었다. 신고자는 지적장애를 가진 20대 여성 A씨.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A씨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 B씨가 ‘무고교사’한 정황이었다. 평소 A씨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해 온 B씨는 “한 사람 앞에 400만원씩 받으면 A씨의 눈도 수술할 수 있고, 생활하는 데 부족함 없다”며 A씨를 꾀어낸 뒤 미리 작성한 허위고소장을 A씨가 베껴 쓰게 하면서 수차례 암기시켰다. B씨는 A씨의 친구 2명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도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에게도 1년3개월 형이 선고됐다.
2021년 서울 동작구의 한 PC방에서 발생한 침입 절도 사건도 비슷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남성 C씨가 범인으로 잡혔으나 조사 결과 C씨는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함께 머물던 남성 D씨에 의해 부추김을 당한 것이었다. C씨와 D씨 모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지난달 발생한 ‘건물주 살인사건’의 배후에 지적장애를 가진 30대 남성에게 살인을 지시한 인근 모텔 주인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재판부는 이처럼 죄를 범한 지적장애인의 판단 능력과 피해 등을 고려해,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는 경우 교도소행 대신 치료감호소 처분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치료감호소에 범법 발달장애인에 적합한 교정·교화 체계가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세계일보 취재진이 최근 5년간 지적 장애인을 꾀어내 범죄를 교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문 7건을 심층 분석한 결과, 무고·위증·절도 교사 사건이 주를 이뤘다. 범행을 실행한 지적장애인과 함께 기소된 교사죄 혐의의 피고인들은 지적 판단력이 취약한 장애인들에게 보호자 행세를 하며 가스라이팅(심리를 지배하는 일)을 했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미정 어깨동무연구소장은 “발달장애인들은 아껴주는 것처럼 다가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뺏기기 쉽다”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범죄에 노출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단 하나뿐인 법무부 산하 치료감호소(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에는 지적장애를 포함한 발달장애인 외에도 조울증, 알코올·약물 중독 등 다양한 병명의 수감자들이 치료받고 있다. 이곳에서 발달장애인들은 다른 수감자들과 같은 교화·교정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약물치료 중심의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발달장애가 약물 등으로 치료할 영역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인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발달장애는 치료 대상이 아니므로 보호처분을 통해 사회 내에서 사회성 교육이나 놀이치료를 하는 것이 적합하다”며 “이들을 치료 대상으로 보고 치료가 안 되니 재범 위험성이 높다며 형량 이상으로 가둬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12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교정시설 내 발달장애인의 재범 방지 및 예후 개선을 위한 ‘발달장애인법 및 형집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죄를 범한 발달장애인에 대해 보호관찰 및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법제화하고,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교정 프로그램을 개발·제공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발의된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1년째 표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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