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수사관 “무고한 해병대원이 죽었다…나중에 밝혀지면 어쩌려고”
“죄송하다” 울먹거린 경북경찰청 팀장, 해병대 전우인 듯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16일 국방부검찰단이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채 상병 사건 기록을 회수한 뒤 해병대수사단 A 수사관과 경북경찰청 B 팀장이 통화한 녹취 파일 2개를 공개했다. 통화는 국방부검찰단이 기록을 회수해 간 지난해 8월 2일과 3일 두차례 이뤄졌다. 군인권센터는 “첫번째 녹취에는 당시 경북경찰청에서 이루어진 기록 회수가 명백한 ‘탈취’이고 탈취 과정에 경찰 지휘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가 되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두번째 녹취에는 항명죄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는 해병대수사단 수사관에게 경북경찰청 담당 수사관이 울면서 미안해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분명 외압 들어올 거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첫번째 녹취는 지난해 8월2일 해병대수사단 소속 수사관 A가 오전 10시30분쯤 경북경찰청에 사건 기록을 이첩하고, 1시간 가량 설명까지 해주고 돌아왔으나 국방부검찰단이 오후 7시20분쯤 이를 도로 가져가자 오후 8시15분쯤 경북경찰청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로 따져 묻는 내용이 담겨있다.
해당 녹취록에서 해병대 수사관 A는 “오늘 저희가 사건을 정확하게 인계를 드렸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라며 “그런데 왜 경북청에서는 제공을 받았다 인계를 못 받았다고 하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다”고 따져물었다. 경북경찰청 수사관 B는 “내부 검토 중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A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말씀 다 드렸습니다”라며 “‘청에서 분명 외압이 들어올 거다’라고 저희가 말씀드린 건데”라고 말했다. B는 “지휘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우리 대장님도 헌병대장님한테 전화를 받으셨더라”고 답했다.
A는 깊은 한숨과 함께 북받치듯 말을 이어갔다. A는 “너무 어렵다. 저희는 정상적으로 다 했는데 결국은 저희가 죽일 놈이 돼서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실망스럽다”며 “분명히 공식적으로 공문으로 다 갔는데”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임 소장은 “통화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경찰 지휘부가 이첩 기록 탈취 이후 이첩 과정과 관련해 ‘검토’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토가 이뤄진 시점은 이미 국방부검찰단이 기록을 가지고 간 뒤로, 경찰은 정당하게 이첩 절차를 밟은 기록을 통째로 국방부검찰단에 넘겨주고 행위를 정당화할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이라며 “검토 과정에 참여한 사람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경찰도 수사외압 사건의 수사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해병대 전우 A와 B, 울음섞인 통화 후 “필승”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두번째 녹취는 지난해 8월3일 박정훈 대령이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되고 국방부검찰단이 해병대수사단을 압수수색 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해병대 수사관 A는 경북경찰청 팀장 B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경북경찰청의 침묵에 항의하고 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A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거 너무한다고 생각 안하십니까”라며 “저희가 범죄자 취급받으면서 지금 압수수색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따졌다. 한숨 쉬는 B에게 A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실 규명을 위해서 그 책임자를 찾고 진실 밝히고 이게 뭐가 잘못됐습니까”라며 “왜 경북청에서는 아무것도 안하십니까”라고 물었다. B는 “그건 잘못된 거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B는 연이어 한숨을 쉬며 “그게 어떻게 그렇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사실 저희들도 잘 모르겠는데”라며 “밝혀져야 될 모든 거는 밝혀져야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관님 죄송합니다. 제가 죄송합니다”라며 B 역시 목이 메인 듯했다.
A는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흥분한 것 같습니다”라며 “저희 수사단장(박정훈 대령)님이 형사 입건됐습니다. 휴대폰도 압수당하고 압색(압수수색) 다 들어오고 여기도 지금 동시에 다 들어와있는데 무슨 근거로 사건 기록이 그렇게 가야 되고, 왜 경북청에서는 이첩 받았다고 정당하게 말을 못하시고,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를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A는 “이거 나중에 밝혀지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는 겁니까”라며 “우리는 겁이 안나서 이렇게 했습니까? 겁났으면 이렇게 말도 안했습니다. 주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모든 걸 솔직하게 다 털어놨지 않습니까”라고 한탄했다. 이어 “팀장님의 힘이 발휘 못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라며 “알고 있는데 아무도 진실을 이렇게 왜곡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무서울 줄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A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며 “다음에 꼭 사건이 거기로 가면 철저하게 수사를 좀 해주십시오”라며 “저희 무고한 해병대원이 한 명 죽었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저희가 맹세를 했습니다. 맹세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밝혀서 저희도 예방을 못했다면 저희도 처벌받겠다고 그랬습니다”라고 전했다. 녹취에선 B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B는 울먹거리며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A는 통화를 마치기 전 “팀장님 저 해병대 906기입니다”라며 “대선배인 거 알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B는 울음을 삼키며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A는 “네 필승”이라며 해병대 경례구호를 붙인다.
◆군인권센터 “경찰 지휘부 개입 정황 수사해야”
임 소장은 “해병대 수사관은 분노하고 경북경찰청 수사관은 무력감에 눈물을 흘리는 통화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라며 “경찰에도 윗선의 압박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북경찰청장에게 외압이 있었던 7월31일 이후 8월3일까지 누가 연락을 해 기록 탈취를 상의한 것인지 수사해봐야 한다”며 “대통령실인지, 국방부인지, 국방부검찰단인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소장은 또 “채 상병 사망 책임의 피혐의자에서 사단장 등 지휘권자를 빼기 위해 국방부, 해병대 뿐 아니라 경찰까지 움직였다는 증거가 담긴 실무자 사이의 통화 내용은 외압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 있다”며 “그러나 수사 외압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발걸음은 사실상 멈춰버린 상태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은 것은 국회가 국정조사를 실시해 공식적 발언대를 만들어 주는 길 뿐”이라며 “국정조사를 통해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로 외압의 실체를 밝히면 국회에 계류 중인 특검법의 향배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지난 8월 5만명의 시민이 국정조사 실시 청원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고, 11월에는 국정조사 실시 요구서가 본회의에 보고됐다”며 “그런데 김진표 국회의장은 요구서를 받아 놓고 2달 째 조사위원회 결정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절차를 밟아 요구 된 국정조사 실시 여부를 의장이 판단할 법적 권한이 없음에도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정조사 실시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사위원회 결정권을 이용해 국정조사 진행을 막고 있는 셈”이라며 “정부의 부정을 밝히는 목적으로 실시하는 국정조사를 어떻게 여당의 동의를 받아서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구성 결정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녹취록은 군인권센터 홈페이지에서 들어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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