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긴축·원격근무 증가에 수요 ‘뚝’
금융권에선 ‘추가 조정 가능성’ 전망도
해외 투자 나선 韓 금융사도 위험 노출
당국 “투자 규모 크지 않아 영향 제한적”
“금융사 잠재 부실 대비 노력 필요”
미국·유럽 등 해외 상업용 부동산(CRE) 시장이 맥을 못 추고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고강도 긴축 기조와 이에 따른 불확실한 경제 상황 등으로 수요가 크게 위축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 가격 지수가 2022년 고점 대비 20% 넘게 빠지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저금리 시기 해외 부동산 시장에 발을 들인 국내 금융권의 투자 자산 부실화도 빠르게 확대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비중이 높지 않고 위험 분산이 돼 있어 미·유럽 상업용 부동산발(發) 위기가 우리나라 금융권 전반의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일부 금융사들은 손실 위험이 남아있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원은 美 상업용 부동산 시장…금융시장 불안감↑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진원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확대된 원격근무로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데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가격도 빠르게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이 커졌다.
26일 부동산시장 조사업체 그린스트리트와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미 상업용 부동산 가격지수는 2022년 6월 149.9에서 지난해 6월 129.7, 같은 해 12월 120.5 등 하향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지수는 전년 동기(134.4) 대비 10.3%, 2022년 고점(4월, 123.8)과 비교했을 땐 24.6% 하락한 수준이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크게 오피스, 아파트(다세대형 임대전용 주택), 소매, 산업(창고·병원 등), 숙박(호텔) 등으로 구분된다. 특히 상업용 오피스의 공실률 문제가 심각한데, 지난해 4분기 18.6%로 30년래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미국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순손실로 전환한 원인으로 상업용 부동산 문제가 부각되며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진 상황이다. 윤석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NYCB가 재점화한 미 상업용 부동산 우려’ 보고서에서 “금융시장 전반에 상업용 부동산 부실 위험이 재조명되며 미 지역은행 불안감이 재차 부각됐다”며 “NYCB에 이어 일본 아오조라은행과 독일 도이치은행, 스위스 줄리어스 베어 그룹도 미국 CRE 관련 충당금 확충 및 실적 악화 전망을 발표해 리스크 전이 우려가 확산했다”고 짚었다.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단기간 내 회복되기는 어려운 만큼, 금융권에선 추가 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韓 금융권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 우려 규모 ‘2조4600억원’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늘려온 국내 금융권도 위험에 노출된 건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56조4000억원(단일자산 투자 35조8000억원·복수자산 투자 20조5000억원)이다.
금융사가 투자한 단일 사업장(부동산) 35조8000억원 가운데 ‘기한이익상실(EOD)’ 사유 발생 규모는 2조3100억원(6.46%)에 달한다. 기한이익상실이란 선순위 채권자에 대한 이자·원금 미지급,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조건 미달 등의 사유로 인해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EOD 사유 발생 규모가 1조3300억원(전체 사업장의 3.7%)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석 달 새 부실 우려 투자액이 1조원가량 급증했다. 지난해 9월 이후 금감원이 확인한 3건의 EOD까지 추가로 합하면 이달 기준 EOD 사유 발생 규모는 2조4600억원(사업장 총 28곳)이다. 금감원은 단일 사업장 투자 외에 복수자산(복수의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블라인드 펀드 등) 투자액까지 포함한 원금 대비 손실률을 5.9%로 집계했다.
이경자·김재우·정민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 16일 보고서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올해 실적 결정 변수 중 하나가 상업용 부동산이 될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지난해까지 해외 상업용 부동산 관련 손실을 상당 부분 인식해오고 있는 가운데 금감원의 사업장 단위 점검 방침 아래 올해 관련 손실 인식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 손실, 전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금융·통화당국 및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해외 부동산 시장이 어렵겠지만, 이로 인한 손실이 금융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규모는 총자산 대비 1% 미만”이라며 “금융사의 양호한 자본비율 등 손실흡수 능력 감안 시 투자 손실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2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실패 우려에 대해 “익스포저(위험 노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자산 중 굉장히 낮은 비중”이라며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미국은 중소형 지역은행을 중심으로 우려가 확대되고 있는 반면 국내의 경우 공격적 해외투자를 감행했던 증권사·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미 상업용 부동산 관련 평가손실 반영 등 CRE 익스포저에 대한 우려가 대두한 상황”이라며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계기로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관련 경계심 또한 고조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금융산업 내 잠재 부실에 대비한 건전성 관리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