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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우리’라는 말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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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13 23:24:15 수정 : 2024-03-13 23: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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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리 북한’이라는 표현을 써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우리 북한의 김정일·김일성 주석의 노력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한 의원은 김정은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노력을 훼손했다면 그럼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무슨 평화애호가라도 되는 것이냐고 비난했다. 이에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남북의 긴장 완화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전체적인 취지인 만큼 구체적인 표현 하나하나에 트집 잡지 말라고 받아쳤다. 같은 당 다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소속 나경원 의원이 2019년 8월 6일에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을 쓴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리’라는 말버릇, 꼬투리 잡는 언론”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필자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논하고 싶지 않다. 그 진실은 이재명 대표나 나경원 의원만 알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우리’라는 말의 사용이다. ‘우리 북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재명 대표와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을 쓴 나경원 전 의원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표현을 쓴 것이 ‘우리’라는 말버릇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경원 전 의원도 이 표현을 쓴 그다음 날 ‘우리’라는 표현이 “의미 없이 때로는 연결어처럼 덧붙여진 것이다. ‘말버릇’이자 단순한 ‘습관’”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실제로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을 아주 많이 사용한다. ‘우리나라’, ‘우리말’, ‘우리 학교’, ‘우리 집’, ‘우리 아빠’, ‘우리 엄마’ 등 이루 셀 수 없다. 이런 표현들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냥 버릇이고 습관일 뿐이다. 그런데 이 표현들을 영어로 옮겨보면 그 어색함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미국 사람은 ‘우리나라’ 대신에 America라는 명사를, ‘우리말’ 대신에 English라는 명사를 쓸 것이고, ‘우리 아빠’를 our father가 아니라 my father로 옮길 것이다. 사실 ‘우리 아빠’, ‘우리 엄마’는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사회에나 존재할 법한 어색한 표현이다.

유창돈 교수에 의하면, 우리라는 말의 어원은 울타리이다. 이 말이 얼른 와닿지 않으면 ‘우리’라는 말 앞에 ‘돼지’라는 말을 붙여보라. 그러면 바로 와닿을 것이다. 이처럼 이 ‘우리’를 명사 앞에 붙이면 그 명사를 울타리로 둘러싸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나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은 자신이 속한 나라나 민족을 큰 울타리로 둘러싸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울타리를 기준으로 안과 밖이 명료하게 구분되고, 울타리 밖에 있는, ‘우리’가 아닌 이들은 배제된다. 또한 어떤 이들이 울타리 안에 있고 어떤 이들이 울타리 밖에 있는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라는 표현을 쓸 때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누군가를 배제하여 그에게 심리적 소외감이나 장벽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우리’라는 말의 남용은 한국인끼리만 살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갈 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양해야 마땅하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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