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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폭행당해도 ‘친절’ 강요… 상사 압박에 고소는 2%뿐 [심층기획-악성민원 시달리는 2030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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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5 06:00:00 수정 : 2024-03-25 15: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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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연구원 ‘2023년 공직실태조사’

최근 3년간 하루 1000건꼴 달해
8·9급 이직 의향 54.7% 대책 시급

“최근 6개월간 폭언 경험” 89% 달해
인격적 모독에 회의감… 목숨 끊기도
9급 경쟁률 21.8대 1 32년 만에 최저

부처·지자체·기관, 법적 대응은 미흡
4명 중 1명 “상사에 포기 종용받아”
정부, TF 가동… 4월 말 대책 발표

최근 경남 창원시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는 ‘민원인한테 이유 없이 쌍욕을 X먹었다’는 글이 올라와 공무원들의 공분을 샀다. 술에 취한 민원인이 욕설과 함께 금전적 요구를 하다 감사실에 불친절하다며 신고를 했는데, 감사실이 되레 민원인에게 사과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감사실이 민원인에게 사과한 녹음기록을 전달하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는 나인데, 왜 사과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악성민원에 시달리다가 공직을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경기 김포시 공무원에 이어 공직에 들어선 지 3개월밖에 안 된 경기 남양주시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이들 죽음 이면에는 ‘악성민원’이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일선 공직 현장에서는 아무리 공무원이 국민들의 공복(公僕)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하더라도 이 같은 악성민원은 인격적 모독으로까지 비춰진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급자의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관행적인 지시와 함께 민·형사상 고소·고발사건에 시달리면서 직무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이직을 준비하는 젊은 공무원도 늘고 있다.

 

24일 행정연구원의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직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8∼9급 공무원 중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54.7%로 절반을 넘겼다. 전체 공무원의 응답 비율(47.6%)에 비해 높은 수치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이 같은 성향이 두드러졌다. 20대에서는 무려 59.2%가 이직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는 54.3%였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도 줄어들고 있다. 전날 실시된 ‘2024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 응시율은 75.8%로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경쟁률 역시 떨어지는 추세다. 원서 접수 결과 9급 공채 평균 경쟁률은 21.8대 1로 1992년(19.3대 1) 이후 32년 만에 가장 낮았다.

과도한 악성민원이 공무원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7개 시·도가 최근 3년간(2020∼2022년) 행정안전부에 보고한 악성민원은 7만9904건이다. 120만명에 달하는 중앙·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연평균 2만6635건의 악성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공휴일을 제외한 근무일수(약 250일)를 감안하면 하루 1000건이 넘는 셈이다.

 

악성민원은 공무원의 업무 능률을 떨어뜨리고 직무를 방해하는 주된 요인이다. 행정연구원 조사에서 직무로 인한 스트레스 중 ‘(악성)민원사무 대응’은 모든 유형 중 가장 높았다. 악성민원으로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는 응답은 54%에 달했다.

 

악성민원은 폭언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회 입조처가 지난해 8월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 18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6개월간 폭언을 경험한 공무원은 88.9%로 절대다수였다. 업무 중 끊이지 않는 민원전화(85.8%), 장시간에 걸친 통화(85.4%), 민원인으로부터의 인격모독(80.4%) 등 사례는 다양했다. 성희롱·추행 등 성폭력을 당한 경험은 28.8%, 16.8%에 달했다. 폭행을 당한 경우도 10.9%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염산테러까지…악성민원 백태

 

2021년 10월 경북 포항시청에서는 60대 민원인 A씨가 염산이 든 생수병을 공무원에게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포항시의 택시 감차 정책에 불만을 품고 청사에 무단 침입해 염산병을 무차별 살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염산을 뒤집어쓴 간부급 공무원은 눈 등 얼굴 부위에 심한 화상을 입아 수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A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건현장에 함께 있던 한 공무원은 “당시 사건이 아직도 가끔 꿈속에서 나타난다”며 치를 떨었다.

 

서울 자치구 공무원 B씨는 동주민센터에서 근무하던 10여년 전 겪었던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B씨는 교도소를 갓 출소한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해 달라는 민원인에게 “기초수급자 요건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온갖 폭언과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며칠 뒤 머리에 인분을 잔뜩 바른 채 또다시 주민센터를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B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린다”며 “이후 한동안 민원인을 대하기가 몹시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8월 대구 서구청에선 50대 남성 C씨가 민원실에서 “내가 왕인데 구청장에게 교육할 게 있다”며 난동을 피웠다. C씨는 제지하기 위해 나선 청원경찰에게도 주먹을 휘둘러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C씨는 공무집행방해와 폭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해 7월 강원 원주시청에서도 30대 공무원 D씨가 60대 민원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민원인은 자신이 교도소 수감으로 받지 못한 재난지원금을 달라며 응대 공무원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민원인을 시청 밖으로 끌고 나가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그는 경찰이 떠나자마자 다시 시청사로 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실제 고소는 2%… “상사, 대응 포기 종용”

 

악성민원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에서는 2022년 민원처리법 개정 등 공무원 보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섰다. 그럼에도 악성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요인 중 하나는 부처·지자체·기관 차원의 미흡한 법적 대응이 꼽힌다. 악성 민원인이 제기한 법적 소송에 강경하게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데다 ‘피해’ 공무원이 ‘가해’ 민원인의 선처나 소속기관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설문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고소·고발까지 필요한 정도의 악성민원을 경험했다’는 공무원은 77.3%에 달했으나 실제 법적 대응이 이뤄진 사례는 2%에 불과했다. 고소·고발 등을 시도했으나 이르지 못했다는 응답은 8.8%에 달했다. 관가에서 상사들이 민원 또는 법적 대응에서 빠지라고 압박한 사례도 빈번했다. 설문조사에서 고소·고발에 이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 4명 중 1명가량(22.4%)이 ‘상사 등으로부터 포기를 종용 받아서’라고 답했다. ‘최근 6개월간 부당한 민원을 들어주도록 상사로부터 종용을 받았다’는 응답률은 61.4%로 절반을 넘었다. 상사로부터 위법한 민원을 들어주라고 요구받은 경우는 43.6%였다.

 

공주석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실제 고소·고발이 2%라는 건 겁나고 두려워서 (법적 대응을) 못한다는 것”이라며 “(악성민원을)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고 기관이 적극 대응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담당자 보호 의무가) 벌칙조항이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으로, 안전요원 배치 등도 제도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8일 악성민원과 관련한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17개 관계기관과 지자체 민원부서장, 전문가 등의 회의를 거쳐 이르면 다음달 말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TF 내부에서는 기관 차원에서 악성 민원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무원 노조 등에서 목소리를 내던 부분 등을 중점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추가 회의를 거쳐 4월 말에서 5월 초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TF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병훈 기자, 포항·창원=이영균·강승우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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