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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저널] 정조의 안식처, 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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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26 22:41:46 수정 : 2024-04-26 22: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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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관 등 119년 만에 완전히 복원
‘화성성역의궤’에 공사 전 과정 기록

지난 24일 수원시에 있는 화성행궁(華城行宮)이 119년 만에 완전히 복원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면서, 자신이 임시로 머물 거처로 조성한 곳이다. 행궁은 왕이 임시로 머무르는 궁궐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국방의 요충지인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비롯하여 왕이 온천욕을 할 수 있는 온양에 행궁이 있었다.

1789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 지역으로 옮기면서, 신도시 화성 건설 사업에 착수하였다. 1794년에 시작한 공사는 1796년에 완공을 보았는데, 화성행궁도 이때 완성되었다. 일제 강점 시기 등을 거치면서 그 원형이 파괴된 행궁 복원 사업은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이번에 우화관(于華館)과 별주(別廚)가 복원되면서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우화관은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이라는 글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신 객사(客舍)로 1789년 화성행궁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물이다. 별주는 왕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한 관서였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때는 별주에 처마를 덧붙여 만든 임시 건물 12칸에서 잔칫상을 준비했다. 정조는 여러 차례 화성을 방문했지만, 어머니 회갑연이 있었던 1795년 행차 때 가장 많은 인원이 정조를 수행했다. 행궁의 여러 건물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다. 메인 행사인 혜경궁의 회갑 잔치를 거행했던 건물은 봉수당(奉壽堂)이다. 김홍도가 그린 ‘봉수당진찬도(進饌圖)’ 그림에는 선유락(船遊樂)이 공연되는 과정과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당시 정조의 행차 상황을 정리한 의궤의 기록을 보면 혜경궁이 받았던 각종 음식의 내역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들은 조선왕실 궁중음식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가 된다.

낙남헌(落南軒)에서는 양로연(養老宴)과 함께 지역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을 실시하고 이들에게 어사화(御賜花)를 하사하는 행사가 베풀어졌다. 득중정(得中亭)에서는 정조가 활쏘기 시범을 보이는 행사가 있었다. 과녁 가까이에서 활쏘기 모습을 구경하던 어린이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화성행궁에서 거행된 주요 행사는 김홍도가 주관하여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 그림들은 조선후기 최고의 회화 작품으로 손꼽힌다.

19세기 말까지 원형을 유지했던 화성행궁은 1905년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서면서 점차 제 모습을 잃게 되었다. 1911년 봉수당이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북군영(北軍營)은 경찰서로 각각 변신하였다. 1923년 화성행궁 자리에는 경기도립병원이 세워졌고, 1989년까지 이곳에 있었다. 이후 역사 유적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수원시의 주요 인사를 중심으로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35년에 걸친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행궁의 중심 건물인 봉수당을 시작으로 482칸 건물의 복원이 2002년 일차적으로 이루어졌다. 행궁의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였지만, 행궁 담장이 너무 낮고 건물의 규모도 축소, 복원되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화성행궁의 복원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 자료는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공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들과 각 건물의 설계도를 비롯하여 크기와 두께 등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성행궁 전도(全圖)까지 남아 있어서 행궁 건물의 규모와 배치 모습까지 확인할 수가 있다. 2002년 행궁이 개방된 이후 필자는 지금까지 1년에 2~3차례는 꼭 이곳을 찾고 있다.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대표적인 역사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행궁이 복원되어 가면서 주변이 변화하는 모습들도 지켜보았다.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의 복원과 그 앞으로 넓은 광장이 조성된 장면, 우화관 자리에 있었던 신풍초등학교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현수막, 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던 이승복 동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제 우화관과 별주가 복원되면서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 조만간 행궁을 찾아보려고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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