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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같이 처마 같이… 모두에게 열린 ‘친절한 출입구’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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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15 07:00:00 수정 : 2024-05-14 20: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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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
자연·육면체 기하학 이루는 대조 강렬
우여곡절 속 ‘소통의 장소’ 개념 유지해
(34) ‘공중 부양’ 서울대 미술관

대지 위에 떠 있는 듯 외팔보 구조 선택
양팔 벌리고 캠퍼스에 서 있는 거인처럼
관악산 능선 덮고 있는 지붕 모습 인상적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됐다. 국내 진출 소식을 알린 건축가 중 몇몇은 조감도나 모형이 공개되기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특히 뉴욕타임스나 가디언과 같은 외신들이 “현대 건축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세계를 바꾼 건축가”, “규범에 도전하는 건축가”로 평가한 렘 콜하스가 설계한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선다는 소식은 건축계를 넘어 문화계 전반을 흔들어 놓았다. 중립성보다는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복잡성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렘 콜하스가 하나의 상징으로 설명하기 힘든 혼성의 서울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건축물을 설계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2003년 6월, 서울대학교 미술관 착공 기사와 함께 경사진 대지 위에 검은색 외관의 모형 사진이 공개됐다. 하나의 형태로 규정할 수 없는 자연과 블랙홀처럼 흡입력 있는 육면체 기하학이 이루는 대조가 강렬했다. ‘검은색 외관은 어떤 재료일까?’,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물에서 아랫부분은 왜 사선으로 잘라낸 걸까?’ 모형만 봐서는 짐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미술관이 들어서는 자리는 서울대를 상징하는 ‘샤’ 정문 동측이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서울대의 상징과 렘 콜하스의 검은색 건물이 어떤 관계를 이룰지 선뜻 짐작되지 않았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대지에 떠 있는 듯한 건물의 형태나 거대한 외팔보(cantilever) 구조보다 더 인상적인 건 관악산의 능선을 덮고 있는 지붕 같은 모습이다. 미술관은 캠퍼스 안팎을 드나드는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막아 주는 커다란 챙이 달린 출입구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건립이 처음 추진된 시기는 1995년이었다. 이듬해 삼성문화재단이 미술관 건립을 약속했고 서울대는 건립 부지를 확정했다. 이어서 렘 콜하스가 미술관의 설계자로 결정됐다. 당시 삼성문화재단은 그와 함께 이태원에 삼성미술관(현 리움·Lee-um) 건립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설계자 선정에서 언론에 모형 사진이 공개되기까지 7년이 흘렀다는 건 설계에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IMF로 사업이 미루어졌고 건립 부지가 처음 자리 언저리에서 두 번이나 바뀌었다. 설계자는 부지가 변경될 때마다 브리지(bridge)를 닮은 형태, 미술관을 지하로 넣고 건물 상부를 주변 지형과 연결하는 형태로 디자인을 바꿨다.

 

설계안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 개념은 서울대 미술관이 순수한 학문의 수준을 넘어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상호 소통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가 관악산 북사면 자락의 움푹 들어간 곳에 있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나마 주변 도시와 연결되는 지점은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는 2∼3개의 출입구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렘 콜하스의 전략은 캠퍼스 내 수많은 건물과는 분명 달랐다. 소통의 장소라는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설계자는 캠퍼스 안팎을 연결하는 보행 동선이 미술관 영역을 지나가도록 했다.

서울대의 ‘샤’ 정문을 드나드는 2년간 미술관이 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2005년 여름, 완공된 미술관은 신문 기사에서 봤던 검은색 외관이 아닌 유 글라스(U-glass) 안쪽으로 건물의 트러스(Truss) 구조가 훤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유리의 투명도와 창틀 정도로 구분되는 불규칙한 형태의 창문이 의미 없어 보였다. 원안대로 미술관이 검은색 외관이었다면 창문의 불규칙한 형태가 훨씬 강조돼 보였을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서울대 미술관의 기본적인 형태는 육면체 박스(box)다. 하지만 설계자는 건물을 대지에 심지 않고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면을 따라 박스 하단을 한 층 정도 높이로 잘라냈다. 그래서 건물은 지형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렘 콜하스는 부유하는 건물의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어려운 선택을 했다.

건물을 땅과 연결하는 구조체는 건물 가운데에 있는 콘크리트 코어뿐이다. 나머지 부분은 외관을 덮고 있는 트러스 구조체를 통해 한쪽만 콘크리트 코어에 고정돼 있다. 쉽게 설명하면 서울대 미술관은 ‘T’자 형태다.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계단, 화장실과 같이 건물에 필요한 설비가 모여 있는 거대한 기둥이 수직의 코어(core)가 되고 전시실, 강당 같은 기능은 거대한 보(beam)처럼 코어에 수평으로 매달려 있는 구성이다. 설계자는 이러한 디자인을 통해 전체적인 모습은 대지에 ‘적응과 대응’하고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부정과 무시’하는 개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건물의 외관이 바뀐 이유도 구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코어에 한쪽이 매달려 있기 때문에 건물 자체의 무게가 많이 나가면 땅으로 향하는 힘(외팔보의 처짐)이 커진다.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를 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언론에 공개됐던 검은색 외관의 재료는 블랙 콘크리트다. 산화철로 콘크리트 입자를 검게 코팅하는 원리다. 그래서 블랙 콘크리트는 겉면뿐만 아니라 안쪽까지 검다. 어쨌든 블랙 콘크리트도 일종의 돌이기 때문에 무겁다.

렘 콜하스가 대안으로 고려했던 몇 가지 외장재는 노출 콘크리트, 내후성부식강판(corten steel), 알루미늄 부식 패널이었는데 모두 무거운 재료다. 그는 건물 외관의 인상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땅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건물의 형태가 더 부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역설인 셈이다. 더불어 서울대의 상징인 ‘샤’ 정문과 어울리기보다는 묵직한 느낌의 건물로 병존을 이루어 다양한 서울대의 상징을 추구했다. 그는 다양성이 무미건조한 세상에 풍요로움을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샤’ 정문과 함께 서 있는 돌덩이 또는 쇳덩이 같은 미술관을 학교 측에서는 다양함이 아닌 대립으로 해석했다. 서울대 정문에서 대학의 상징은 온전히 ‘샤’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건물의 무거운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리 세계적인 건축가라 하더라도 대학의 상징과 이미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렘 콜하스는 외장재를 유 글라스로 바꾸면서 그때까지 꼭꼭 숨겨 두었던 건물의 트러스 구조체를 드러내 버렸다. 자신이 제안한 대안에 계속 동의하지 않는 학교 측에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 그는 공사 현장에서 트러스의 형상을 디자인 요소로 이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코어에서 건물 끝까지의 길이는 17∼19m다. 의인법을 쓰자면 서울대 미술관은 17∼19m 길이의 양팔을 벌리고 캠퍼스 앞에 서 있는 거인이다. 그런데 이 거인의 팔 밑이 의외로 유용했다. 미술관 근처 건물에서 머물던 몇 달간 미술관은 비가 오는 날에는 거대한 우산이, 햇빛 강한 날에는 처마가 되어 주었다. 휴식이 필요해 건물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면 관악산 능선을 덮고 있는 지붕이 된 미술관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관리상의 이유로 미술관 옆을 지나는 보행 동선이 건물 내부에서 설계자가 의도했던 관람 동선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서울대 미술관은 모두에게 열린 친절한 출입구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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