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람근린공원, 환경부장관상 받아
‘지분적립’ 모델로 서민 내집마련 기회
공기 단축·자재 재사용 등 탄소 저감
도민 소통 늘리고 전세피해 지원도
#1. 올해 3월27일 경기 수원시의 한 회의장. 도민 등 150여명이 운집한 자리에선 경기주택도시공사(GH) 최상위 기구인 ‘기회수도파트너스’의 첫 번째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총회에선 민선 8기 GH가 추진해 온 지분적립형 주택과 제3판교테크노밸리, 전세피해지원센터 등의 사업 성과가 보고됐다. 이어 무대 위에 마련된 파란 우체통에 도민 목소리가 담긴 편지를 넣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기회수도파트너스는 도민 주주기업 실현을 목표로 지역대표 114명, 고객대표 16명, 직능대표 20명 등 150명으로 꾸려진 도민 주주단이다. 2년간 명예직으로 활동하며 GH의 사업 계획 및 경영 성과를 보고받고 다양한 제안을 내놓는다.
총회에 참석한 60대 노인은 “도민 의견을 듣는 소중한 소통 창구가 마련됐다”고 평가했고, 20대 청년 대표는 “전세사기에 취약한 청년층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김세용 GH 사장은 “주주(도민) 여러분의 냉정한 평가와 조언을 듣고 다양한 제안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화답했다.
#2. “붉은머리오목눈이와 흰뺨검둥오리, 직박구리, 참매 등 자취를 감췄던 새들이 돌아오고 제비·뿔·먹부전 나비가 곳곳을 날아다닙니다. 고라니와 수달, 두더지를 목격했다는 주민도 있죠.”(장재호 GH 신도시총괄부 과장)
경기 광주시 역동 아파트 숲 사이에는 주민 참여형 생태 복원을 표방한 도람근린공원(1만8310㎡)이 자리해 있다. GH가 6년간 70여억원을 들여 조성한 공원이다. 쇠백로와 박새가 돌아올 만큼 옛 생태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잇단 개발사업과 기후변화로 위협받아 온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GH가 주민과 협의해 2017년 4월 첫 삽을 떴다. 지난해 10월 조성이 마무리되자 청개구리와 호랑나비가 찾아드는 청정지대로 변신했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 과장은 “도농복합지역인 이곳 주민들은 애초 놀이·운동시설이 갖춰진 도심공원을 원했다”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로 이곳을 떠난 생물들이 돌아오도록 설득했다”고 전했다. 공원 조성은 전문가 자문과 답사, 주민 참여형 설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다층 식재 등을 거쳐 이뤄졌다. 최근 모니터링에선 생태공원 조성 직전 11종 55개체였던 조류, 곤충, 양서류가 15종 93개체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72t가량의 산림 탄소 상쇄 효과 역시 확인됐다.
◆27세 ‘청년 GH’의 ESG 실천… 민선 8기 가속
창립 27주년을 맞은 GH가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친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개선(ESG: 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3일 GH에 따르면 공사의 ESG 가치 실현은 민선 8기 출범과 김 사장 취임 이후 봇물이 터졌다. 도시설계 전문가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을 거친 김 사장은 2022년 12월 공사로 자리를 옮긴 뒤 공간복지와 환경·윤리 경영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도내 택지와 산업단지, 주택·도시 개발사업을 책임지는 GH는 경기도가 100% 출자한 지방공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예산 규모는 7조4440억원, 매출액 1조3436억원의 매머드급 조직을 자랑한다. 신도시 및 산업단지 53곳(4500만㎡)에서 60조원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GH의 ESG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환경 분야에선 친환경 도시 조성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자원순환 체계 전환에 목표를 둔다. 사회 분야에서는 사람 중심 경영과 지역사회 공헌, 동반 성장, 일자리 기반 조성을 강조한다. 지배구조 분야는 윤리·투명 경영과 공정 경쟁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이를 위해 15명 안팎의 ESG경영위원회를 분기별로 개최하고 심의·의결에 나선다.
이렇게 쌓인 성과는 지난해에만 소나무 336만그루 식재에 맞먹는 온실가스 감축(2만2000t)과 미세먼지 저감(48t), 건설폐기물 아스콘 재활용(5292t), 안전보건관리예산 집행(183억원), 조세심판청구·조달비용절감에서의 적극 행정(691억원)으로 이어졌다.
환경경영은 손에 잡히는 GH의 가치 중 하나다. 개발사업지구에 조성된 도람근린공원은 지난해 11월 우수 복원·보전 사례로 꼽혀 제23회 자연환경대상 환경부장관상을 받았다. 최근 입주를 마친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의 국내 최고층(13층) 모듈러 주택의 경우 공사 기간 단축과 자재 재사용으로 탄소배출량을 약 44% 저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6년 개통 예정인 신안산선 학온역에선 하루 2000㎥씩 유출되는 지하수가 순환 체계 구축에 따라 공공건축물 냉난방과 소수력발전에 활용된 뒤 다시 조경용수로 이용될 예정이다. 올해 3월 한국동서발전과 맺은 임목자원 재활용 협약은 11만3000t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남양주 왕숙 등 공공주택지구에 조성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시티는 에너지 재활용의 선순환 모델로 설정됐다.
◆지분적립형 주택·유출 지하수 재활용 등 눈길
사회경영에선 광교신도시 및 남양주 왕숙신도시에 국내 처음으로 도입되는 ‘지분적립형 주택’이 눈에 띈다. 진입 장벽을 낮춰 평범한 도민에게 자산 형성 기회를 주는 경기도형 공공분양주택으로, 은행 적금과 같이 20∼30년에 걸쳐 분할 취득한 뒤 처분하게 된다. 차익은 최종 지분율에 따라 배분된다. 2025년 하반기쯤 광교신도시(A17 블록)에 240호가 시범 공급되며 왕숙신도시에선 1만여호까지 확대된다.
GH가 추진 중인 고양 기업성장센터와 판교 스타트업 플래닛, 기회발전소, 안성청사복합건물, 청년 혁신타운 등도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 확보와 삶터·일터·쉼터가 어우러진 개발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GH가 전국 최초로 개설한 전세피해지원센터 역시 사회경영의 한 축을 이룬다. 법률 구조와 경·공매 유예, 지방세 감면, 우선매수권 행사, 저리 대환대출, 심리치료, 생계·복지 지원 등 섬세한 접근이 강점이다. GH는 지난해 11월 사회적채권 1900억원을 발행해 사회인프라 구축과 서민주택 공급에 투입하기도 했다. 취약계층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G하우징 협약’, ‘찾아가는 주거복지상담’, ‘반지하 취약계층 풍수해보험 지원’도 사회 분야 공익 활동으로 꼽힌다.
환경·사회 경영을 결합한 확장형 사업도 추진 중인데 노후 건축물을 재활용하는 공동이용시설 개·보수 작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에는 몽골 울란바토르 도시주택공사와 업무협약을 거쳐 스마트도시 조성 역량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배구조 개선에선 도민 소통을 위한 기회수도파트너스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내부 직원 인권 침해 구제 전문 기구인 GH인권센터와 투명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노동이사제 역시 힘을 보태고 있다.
정운영 GH 경영기획처장은 “외부 기관으로부터 환경 450억원, 사회 1조2801억원, 지배구조 9억원 등 약 1조3260억원(2022년 기준)의 ESG ‘화폐화 가치’ 성과를 평가받았다”고 밝혔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직원 대표, 경영 참여 보장… 투명·공정, GH의 기업문화”
“지속적 혁신으로 도민에게 사랑받는 100년 기업이 되겠습니다.”
지난해 5월 김세용(사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은 화성시 동탄의 ‘행복주택’ 건설 현장에 망치를 들고 나타나 현장 관계자들을 당황케 했다. ‘품질 경영’을 강조해 온 그는 관용차에서 준비한 망치를 꺼내 지하 출입구의 일부를 부수고 재시공을 지시했다. 돌출한 벽돌 부분의 마감처리가 미흡했다는 이유에서다. 도시설계학자 출신인 김 사장의 행동은 단숨에 현장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여론이 들썩이던 때였다.
김 사장은 23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탄소중립 못지않게 투명 경영과 동반 성장을 강조했다. 그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은 GH 기업 문화의 일부”라며 “노동이사제로 직원 대표의 경영 참여와 투명한 의사결정을 보장했고, 윤리 경영 추진 전략도 수립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생을 통한 동반 성장을 추구한다”면서 “고품질의 공공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해 도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더 나은 주거 공동체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이 추구하는 주택은 획일적 설계에서 벗어나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계층의 꿈이 이뤄지는 곳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수도권 집값이 꿈을 아득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그는 지분적립형 주택을 내놓았다. 초기 25%의 지분(자금)만 확보하면 4년마다 지분을 늘려 20년 뒤 내 집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결혼을 앞둔 청년 세대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쳐 저출생 극복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국 도시개발공사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인 CES 참여를 이끌었던 김 사장은 용인시 영덕의 13층 모듈러 주택 건설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안전사고율을 낮추는 스마트 안전관리 통합관제시스템, 공공건축물 제로에너지건축(ZEB) 적용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일이 임기 안에 안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는 “사업실시계획 등 절차를 마무리하면 앞으로 쉽게 돌이킬 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지분적립형 주택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라도 공익적 활동을 하는 GH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처럼 부채비율을 500%까지 완화하는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