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확대에 교육현장 혼란 우려
의료수가·사고분쟁 해결 시급 강조
“국민 기댈 수 있는 건 입법부 유일”
대통령실엔 ‘상설협의체’ 제안도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으로 인한 교육현장 혼란을 우려하며 22대 국회를 향해 “의료 전문가 집단이 포함된 국회 협의 기구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책이 여야 합의를 거친 법안을 통해 합리적으로 추진되도록 해 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비대위는 “의대 정원을 일시에 50% 늘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며 “이대로라면 의료 파국은 정해진 미래”라고 주장했다. 정부 정책대로 증원이 이뤄지면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에서 2025년 4567명으로 49.3% 폭증한다. 비대위는 해외 의료 선진국에서는 연 10% 미만씩 10∼20년 동안 단계적으로 증원한다며 “증원이 필요하다고 해도 한 번에 10% 미만으로 증원해야 제대로 된 의대 교육이 가능하다”고 교육 질 저하 문제를 꺼내들었다. 이에 정부가 의대 인증 기준을 낮추려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1980∼1990년대 소규모 의대가 많이 생기면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의료 교육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 인증관리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평가 정도를 낮추겠다고 한다”며 “이게 과연 국민이 원하는 질이고 의평원의 역할이냐”고 비판했다.
앞서 최창민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도 24일 “정부는 대학별 건의사항이라는 명목으로 의평원 인증 기준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평원의 교육 여건 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대학의 경우 폐교 처분이 내려지거나 재학생에게 의사 국가고시 응시 불가 처분이 내려진다.
비대위는 의사 증원을 위해서는 의료수가체계, 의료전달체계, 의료사고분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면 ‘소아과 오픈런’이나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완화될 것이고, 이후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과학적으로 추계해 증원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정부와 사법부 모두 현재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 국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020년 문재인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 의·정 갈등을 거론하며 “의료 공백이 한 달 만에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국회 주도로 의·정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다시 한 번 개입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실에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상설협의체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비대위는 정권이나 공무원 임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장기계획을 끌고 나가야 한다며 상설협의체를 제안했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생활고를 겪는 전공의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부터 선배 의사가 매달 전공의 1명에게 25만원을 무이자나 2% 이하의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선배 의사와의 매칭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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