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배척과 폐쇄 통해선 해결 어려워”
다른 집결지로 이동 양상… 풍선효과 우려
용주골 만들어진 ‘6070’ 거리 재현 아이러니
“단기 성과 기대할 게 아니라 장기적 지원 필요” 끝>
<글 나가는 순서>
1화 그녀가 ‘용주골 아가씨’가 된 이유
2화 그만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3화 시와 싸우는 여인들
<편집자 주>
‘쉽게 돈 벌려는 사람들’. 성매매 여성을 향한 세간의 인식은 곱지 않다. 생존권을 위해 시간을 달라는 말이 집결지 폐쇄 때마다 나오는 ‘앓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경기 파주시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을 둘러싸고 시와 성매매 여성들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집결지 가림막 철거와 집결지 내부 폐쇄회로(CC)TV 설치 등을 통해 폐쇄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립을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달라며 대치했다. 이번에도 성매매는 명백한 위법이니 유예가 아닌 즉각 폐쇄가 답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세계일보는 “나갈 만한 아가씨는 다 나갔다”는 용주골에서, 남아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불법은 당장 폐쇄’라는 간편한 당위로 해결할 수 없는 취약계층 여성이 당면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주골에 남아 있는 성매매 여성 114명 가운데 63명을 설문조사하고 6명에 대해서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용주골 이야기를 3화에 걸쳐 보도한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가 이야기하는 ‘취약한 집단’에서는 철저히 배제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의 연구용역 한국형사·사법정책연구원 등이 진행한 ‘2019년 성매매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결론의 한 대목이다. 연구는 성매매 유형을 3가지로 나눴다. 집창촌 형태의 전통형 성매매, ‘오피방’ ‘안마방’ 등 중간형 성매매, 조건만남 등 온라인 성매매다. 경기 파주시 용주골은 전통형 성매매 지역에 속하는데, 연구는 이들 지역의 성매매 여성이 특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배척과 폐쇄를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공존에 기반한 상생의 목소리를 내줘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파주시는 ‘여성친화도시 조성’ 계획의 일부로 2021년부터 용주골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시가 집결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긍정적이다. 다만 일각에선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행보가 성매매 여성들의 재사회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여성친화도시’ 정책에서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는 또다시 제외된다는 점이다.
◆파주시와 분투 벌이는 성매매 여성들…“풍선효과 우려”
시는 조례까지 만들어 지원하겠다던 용주골 성매매 여성들과 지난해부터 갈등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용주골 성매매 여성 하루씨는 시로부터 최근 5번째 고소와 고발을 당했다. 혐의는 매번 비슷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공무집행방해, 집시법 위반 등이다. 시가 용역을 데리고 와 용주골 내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용주골 주변 가림막을 철거하려 할 때마다 현장에서 방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일부 혐의에 대해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약식기소했다.
이현정(49·가명)씨는 지난 15일 오후 5시 퇴근 후 쓰러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소 뇌경색이 있었던 현정씨는 지난 3월8일 시의 가림막 철거를 막으러 콘크리트 제방에 올라갔다 떨어졌다. 병원으로 이송됐던 그는 이후 어지러운데도 폐쇄 여론으로 손님이 줄어 근무 시간을 무리하게 늘렸다. 이게 화근이 됐다. 정신장애와 왜소증을 앓고 있는 두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현정씨는 두 동생 외엔 보호자가 없어 병원에서 현정씨의 정확한 상태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연구는 “내쫓고 폐쇄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의 자활과 재사회화에 손을 내미는 포용적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용주골과 같은 전통형 성매매 집결지가 감소하고 있긴 하지만 생계 압박이 해결되지 않은 성매매 여성들은 다른 집결지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장기간에 걸친 직업훈련과 자활정책 지원”을 당부하며 “(그래야) 폐쇄나 도시재생이 계획되는 지역일수록 여성이 다른 집결지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약자라는 입장(관점)으로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지난해 1월부터 6차례에 걸쳐 시장과 부시장이 용주골 업주와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도 대화 요청에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용주골 성매매 여성들은 시가 면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과 종사자가 만나 대화한 면담은 지난해 8월 단 한차례만 있었으며 1시간도 안 돼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다는 것이다.
◆반성매매 단체가 시를 비판한 이유는?
시는 용주골과 재개발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용주골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있는 것은 맞지만 이는 민간이 하는 것이며, 집결지 폐쇄는 단순히 성매매가 위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재개발은 아니지만 시는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도시재생 사업’을 벌인 바 있다. 2021년 1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파주시로부터 용역을 받아 연구하고 발간한 ‘파주시 여성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 보고서를 보면 시는 2019년부터 창조문화밸리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으로 ‘6070 창작문화거리’ 조성을 추진했다. 이후 해당 사업은 ‘EBS 연풍길 창작문화거리’로 이름을 바꿔 지난해 12월 완료됐다. 용주골 주변은 모두 도시재생(정비)사업으로 묶여 있는 상태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성매매 집결지는 늘 눈엣가시 같은 지역이다.
이런 가운데 반성매매 단체가 파주시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지난해 5월 논평을 내고 “성매매 집결지를 제거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시가) 시민 안전과 지역 이미지 실추를 근거로 사용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성매매 집결지와 성매매 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 문제적”이라며 “하지만 불온하기에 ‘우리’의 안전을 위해 ‘눈에 띄지 말라’는 방식으로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려는 기조는 성매매 집결지가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 ‘빈곤한 존재’, 자원이 ‘없는’ 존재들을 향한 차별과 낙인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며, 성매매 집결지와 성매매 여성을 향한 차별과 낙인을 활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룸은 용주골 폐쇄 문제가 간단치 않다고 강조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그들이 당면한 현재적 상황에서의 절실한 발화”라면서도 “‘3년간의 유예기간’이 성판매 여성 외에 업주의 이해관계이기도 하다는 것을 청량리 집결지 폐쇄 과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어 출구 없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매매 산업은 없어져야 마땅하지만, “정의로운 도시를 구성하기 위해 성매매 집결지 공간이 여성들에게 삶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성판매 여성들의 성원권을 보장하라”고 덧붙였다.
연구를 진행한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시의 지원 조례가 단기적 결과를 내놓도록 기대하고 있기에 대다수 여성은 직업훈련과 자립에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단 자립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 “사회 정착에 대한 의무감을 높이고 시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일방적 비용 제공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저리 대출처럼) 이후 상환하도록 하는 보조 방식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예기간을 두자는 의견에 대해선 “단순히 영업 기간 연장 수준은 안 된다”고 단언했다. “유예기간은 두더라도 강제적인 교육이나 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비교했을 때 파주시청의 지원 기간이 2배 더 길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파주시 성매매 피해자로 결정되면 1년 지원하는 타 지자체의 2배에 해당하는 2년간 생계비와 주거비, 직업훈련비를 지원받고, 자립 준비를 마치면 별도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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