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에서 ‘지구당’ 부활 논의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과거 ‘오세훈법’으로 지구당 폐지를 이끌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구당 부활이) 한국 정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맹폭했다. 특히 오 시장은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지구당 부활론을 띄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싸잡아 비판하며 날을 세웠다.
오 시장은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원외 정치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형평성 문제를 알기 때문에 지난 며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여야가 함께 이룩했던 개혁이 어긋난 방향으로 퇴보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려 한다”며 “지구당을 (다시) 만들면 당대표가 당을 장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또 한국 정치 발전에는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지구당은 각 당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정당의 지역 하부조직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사건’으로 불린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계기로 폐지 여론이 일었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 의원 시절 오세훈법(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2004년 법이 통과되면서 지구당은 폐지됐다.
오 시장은 “오세훈법의 당초 취지는 돈먹는 하마라고 불렸던 당 구조를 원내정당 형태로 슬림화해 고비용 정치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지구당은 지역 토호의 온상이었다”며 “지구당 위원장에게 정치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 지방의원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그들은 지역 이권에 개입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와 공천권을 매개로 지역 토호·지구당 위원장·당대표 사이에 형성되는 정치권의 검은 먹이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것이 오세훈법 개혁의 요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 시장은 “한국은 공천권을 당대표가 쥐지만, 미국에선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국민이 공천권을 행사한다”며 “그 때문에 미국 정치인은 당의 실력자가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소신정치를 할 수 있다. 제가 얼마 전 당대표 선거에서 국민 100% 경선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던 이유”라고 부연했다.
오 시장은 “당대표나 당 조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며 “기본적으로 자기 당을 위한 선거 조직이고, 특히 한국에서는 그로 인해 정쟁이 유발되며 격화한다. 국민은 어디에 있나”라고 따졌다. 그는 “미국처럼 원내대표가 당을 이끌어가며 입법 이슈를 중심으로 정치가 흘러가는 게 이상적”이라며 “그러나 법 개정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에선 당대표 중심의 구조가 여전하다”고 일갈했다.
여야가 동시에 지구당 부활 이슈를 경쟁적으로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오 시장은 “당대표 선거에서 이기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라고 역설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설이 제기되는 한 전 위원장과 국회의장 당내 경선 후 권리당원 집단탈당 등으로 술렁이는 당원을 다독여야 하는 이 대표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전 위원장은 전날 SNS 게시글을 통해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다”며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 신인과 청년들이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고, 정치영역에서의 격차 해소”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당원 콘퍼런스 행사에서 “지구당 부활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러시아 공산 혁명, 중국 문화대혁명, 통합진보당 사태 등에서 우리가 목도했듯이 극단적 생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는 가장 우려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지구당 부활을 거듭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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