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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양배추김치?”

대학 시절 기숙사 식당에 생소한 양배추김치가 등장한 건 솟구치는 배추값 탓이었다. 이른바 ‘배추 파동’으로 학교 식당에서조차 기본 반찬인 배추김치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양배추김치나 깍두기, 단무지 등 여러 대체 반찬이 한 달가량 이어졌다. 배추를 찾아보기 어려운 때였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었다. ‘김치가 조금 아쉽다’ 정도였다.

박미영 경제부 기자

이번에는 양배추였다. 최근 장을 보러 찾은 마트에서 한가득 쌓인 양배추에 붙여진 종이에 ‘초특가 세일 7890원’이란 문구를 발견했다. 양배추 가격이 폭등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한 통에 8000원이나 된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양배추는 가격이 저렴하고 보관하기도 쉬워 항상 구비해놓는 식재료였다. ‘사놓을까, 말까’ 망설이지도 않았었다. 당분간 양배추와는 안녕! 미련 없이 다른 코너로 향했다.

이렇게 일시적이나 구매를 포기한 식품은 양배추뿐만이 아니었다. 작년부터 금값이 된 사과와 배를 비롯해 겨울철 상자째 쌓아놓고 먹었던 귤도 가격이 눈에 띄게 뛰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이 원인이라는데 그 여파는 길었다. 하나가 오르면 대체하는 다른 과일도 뒤이어 오르는 식이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니 가공식품에 더해 외식물가도 줄줄이 뛰어올랐다. ‘치킨플레이션’, ‘냉면플레이션’ 등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조합한 신조어가 앞다퉈 등장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우리나라 성장률은 시장 전망치(0.5~0.6%)를 크게 웃도는 1.3%(전기 대비)를 기록하면서 ‘깜짝’ 성과를 달성했다. 나아가 고물가 체감경기와는 거리가 있는 결과에 많은 이들이 더욱 놀랐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기자 설명회에서 “1분기만 놓고 보면 내수가 부진을 벗어나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속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 여건이 녹록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었다.

이와 달리 대통령실은 호실적에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경제성장에 대한) 민간 기여도가 1.3%포인트로 민간 주도 성장이 이뤄졌다”며 “금년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당초 예상했던 2.2%를 넘어서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기획재정부도 자료를 내고 “우리 경제의 성장경로에 선명한 청신호”라며 “분기별 변동성은 있겠지만, 수출 개선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수 회복세도 점차 확대되면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그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싱글맘 케이티는 식료품 보급소에서 허겁지겁 통조림 캔을 따 입안에 욱여넣는다. 먹을 게 없어 며칠을 굶었던 그녀는 손을 덜덜 떨면서 마셨지만, 그마저 삼키지 못했다. 케이티는 눈물을 흘리며 “너무 배가 고파 그랬다”고 말했다.

배추값이 오르면 양배추를 먹고, 사과나 배가 오르면 수입 과일을 먹으면 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미봉지책(눈가림만 하는 일시적인 계책)일 뿐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 ‘OO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있는지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더욱이 그러한 대책에서조차 소외된 이들에게 먹거리 문제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서프라이즈 성장’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닌 냉정한 현실 진단과 해법이 필요한 때이다.


박미영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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