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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한탄 청년들에 "불공평에 매몰되지 말길”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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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17 06:00:00 수정 : 2024-06-18 07: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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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크리스천 재단 이용기 이사장 방한

냉난방 수리로 美 사업 키웠지만
LA 폭동 등에 공든 사업 무너져
위기 딛고 연매출 1억달러 일궈

사업체 매각한 후 장학재단 설립
모교 한양대 3년째 美 탐방지원
“청년들 불공평에 매몰되지 말길”

낮에 수업을 듣고 잔디밭에서 앉아 낭만을 즐기는 것이 꿈인 청년이 있었다. 가난 탓에 낮엔 일하고 밤에 야간대학을 다니던 이 청년은 기회를 찾아 미국행을 선택했다. 고생과 시련,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로 결국 연매출 1억달러(약 1400억원)의 큰 사업체를 일궜다. 이제는 젊었을 적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을 도울 수 있게 됐음을 기뻐한다.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용기(78) A&E크리스천재단 이사장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지난 13일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봤다.

이용기 A&E크리스천재단 이사장이 13일 서울 강남구 파크하얏트서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뒤 청년들을 돕고 있는 이 이사장은 “좌절하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이 이사장은 생계를 위해 에어컨·냉장고 등 수리기술을 배웠다. 한양대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2부(야간)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1968년 냉동기술자 베트남 파견에 지원했다. 3년 계약이 끝날 즈음 한국 대신 미국으로 향했다. 이 이사장은 “흙수저였던 내가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야 한다는 각오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미국에서 한인 학생 등 6명이 한집에 살면서 냉난방 수리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몇 년 뒤엔 수리 숍을 따로 차렸다. 쇼핑센터, 골프장 매입 등 부동산사업도 병행하며 커갔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과 불경기는 큰 위기였다. 그동안 쌓은 모든 것이 날아갔다. 살던 집에 차압이 들어올 정도로 흔들렸다.

그러나 1996년 에어컨 부품 공기처리장치 제조사 ‘트루에어’를 설립해 다시 일어섰다. 미국 내 동종업계 1위를 차지했다. 미 전역에 5개 유통센터를 뒀고, 베트남공장 직원은 1600명, 연매출은 1억달러에 달했다. 이 이사장은 2020년 3억6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회사를 매각했다.

이 이사장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한국에서 밤에 학교 다닐 때보다는 또는 처음 미국 왔을 때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했다”며 “비싼 수업료를 낸 뒤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팔았을 때 어떤 사람은 ‘대박’을 맞았다고 했지만 대박은 복권 당첨 같은 것이고, 이것은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법’을 기대하며 성공 요인을 묻자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신뢰”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이사장은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신뢰를 쌓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뢰는 위기를 넘기는 밑바탕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그의 자랑은 사업 성공이 아니다. 이 이사장은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았나’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성공”이라며 “은퇴할 때 고객들이 서운해하는 걸 보면 나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사회 환원에 힘쓰고 있다. 주로 청년들을 지원한다. 2021년 A&E크리스천재단을 만들었다. 자녀들이 베푸는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앤드루)과 딸(엘리자베스)의 이름을 땄다. 재단은 어려운 선교사와 신학생을 돕는다. 그는 LA코리아타운 라이온스클럽 장학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 이사장은 3년째 매년 한양대 학생 4명에게 약 2주간의 미국 탐방을 지원하고 있다. 전액 사비다. 프로그램 이름은 ‘마이 퍼스트 패스포트(My First Passport)’로, 경제적 문제로 처음 여권을 만드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 이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상대적 빈곤을 많이 느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급해하고 서두른다”며 “그렇다 보니 좌절하고 부모나 가정을 원망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원을 통해) 이들에게 불공평함에 눈 돌리지 말고 ‘너희들도 잘할 수 있다, 내 갈 길은 내가 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한양대는 이 이사장에게 18일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이 이사장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노력하면 나도 명예박사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런 전체 학생들의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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