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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하게 보이는데 오목한 음각… 비움 통해 채우다

입력 : 2024-06-24 20:37:17 수정 : 2024-06-24 2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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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개인전 ‘순간의 지속’

볼록과 오목함·음과 양·겉과 속 뒤바뀐
‘역상조각’ 창안 이후 40년 작품세계 조명
평범한 이웃의 일상 등 친근한 소재 담아

조각 속 인물 옷감의 질감까지 구현해내
카메라는 효과 재현 못해 직관해야 제맛
평론가 김원영 “마술에 가까운 환영” 호평

두 발을 어깨너비만큼 편하게 벌리고 서서, 몸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 작품 속 인물들도 좌우로 살아 움직인다. 좌우가 아닌, 상하 또는 대각으로 움직여봐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인물의 눈길은 관객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따라온다. 깊이 파인 작품일수록 움직임의 효과가 더욱 크다.

조각가 이용덕(서울대 교수)이 창안한 ‘역상조각’이다.

 

‘동시성’.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촬영한 세계 네 곳의 사람들 모습을 역상조각에 담았다. 그 가운데 작가 이용덕이 서 있다.

대여섯 걸음 거리를 두고 관람하면 볼록 튀어나온 양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벽에 걸린 작품을 향해 성큼 다가가면 안쪽으로 오목하게 파인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마냥 신기하다. 분명 움푹 파냈는데도 바깥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형태만이 아니라 질감까지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조각 속 인물이 입고 있는 옷감의 엷고 두꺼움까지 구현해낸다.

작품 가까이 접근한 관람객들은 조각이 지닌 부피감이나 존재감,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 대신, 방금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대상이 어느새 쏙 빠져나가 버린 듯한 빈자리를 감지하게 된다. “헐!” 음과 양이 뒤바뀌어 제작된 조각의 파인 공간이 주는 공허함이 엄습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정반대의 현상에 관람객들은 그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배시시 웃을 뿐이다.

역상조각의 이러한 효과는 사진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두 눈을 가진 관객에게만 나타난다. 외눈 렌즈 카메라에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카메라가 역상조각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만다. 직접 두 눈으로 직관해야 하는 이유다.

 

‘Giggling’(키득키득) 1(위쪽 사진)과 2. 외눈 렌즈 카메라는 역상조각을 포착할 수 없다. 양각조각(1)처럼 보이는데, 실제는 깊이 파인 음각조각(2)이다.

평론가 김원방은 “음과 양이 도치된 속이 텅 빈 조각인데, 이용덕은 이를 감탄스러울 만큼 완벽하고도 매력적으로 완성해내고 있다”며 “그것은 관객에게 거의 마술에 가까운 환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호평한 바 있다. 그는 “마르셀 뒤샹, 브루스 나우먼, 리처드 세라, 레이첼 화이트리드 등의 작가들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이용덕의 방식은 그들과 또 다른 방법을 택하면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상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또 “이용덕의 음각 조각은 ‘존재 대 비존재(무)’라는 이분법적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부정이면서 동시에 비존재의 부정’, 즉 ‘이중부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984년인가 85년인가, ‘음’과 ‘양’에 대해 생각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역상조각)였죠. 일부는 들어가게, 일부는 나오게 보이도록 만들지만 전체를 보면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게 한다든가…. 음각으로만 조각해도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양’이 내재하기 때문에 양각으로 보이는 거죠.”

 

‘웃음’. 얼굴이 깊이 파인 작품이라서 움직임의 효과가 크다.

이용덕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실제’와 ‘재현’에 주목했다. 대부분 추상조각에 줄을 섰을 때 그는 인물조각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다들 구상조각은 진부하다고 여겼지만 “인물은 여전히 파고들 것이 많다”면서 ‘음과 양’이 뒤바뀐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이란 새 장르를 열었다. 음각으로 새기지만, 보는 이들에겐 양각으로 보여 신비롭다. 볼록함과 오목함, 겉과 속, 음과 양이 뒤바뀐 이 역상조각은 ‘상반된 두 세계의 공존’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있다고 생각했던 것’(양각처럼 보일 때)과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음각이란 걸 아는 순간), 그런데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있는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병존하는 작품이다.

그가 깎거나 빚어내는 대상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다. 앞을 보며 경쾌하게 걸어오는 여자, 청소년들의 거리농구, 엎드린 채 무언가 적고 있는 여자, 대야에 물을 받고 구부정한 자세로 세수하는 노인, 벤치에 앉아 생각하는 여자 등이다. 편안하고 대중적이며 즐거움을 주는 친근한 소재들이다.

 

‘세수’

정연심 교수(홍익대 예술학과)는 ‘이용덕 역상조각: 지표성에 대한 비평’이란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조각, 제프 쿤스의 조각, 두안 핸슨의 작업에서도 인체가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이 작가들이 내세우는 새로움이란 모더니즘 조각에 대한 반격이나 현 사회에 대한 풍자, 혹은 팝적인 아이콘, 하이퍼리얼리즘적인 문맥으로 동시대 소비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용덕의 인체 조각, 혹은 역상 조각은 이러한 조각들과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것은 조각의 양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의 네거티브 스페이스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조각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용덕의 개인전이 ‘순간의 지속-THE MOMENT NOT A MOMENT(더 모멘트 낫 어 모멘트)’이란 문패를 내걸고 7월7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린다. 1984년 역상조각 형식의 작품을 최초로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로 2024년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망각 속으로 소멸해버리는 일상의 기억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비움을 통해 오히려 채워지는’ 그의 철학적 탐구를 공유하는 기회가 될 듯싶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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