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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법조일원화라는 ‘거룩한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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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26 23:24:38 수정 : 2024-06-26 23: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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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밀린 법관 증원법… 사명감 강요는 비현실적

불편한 진실이지만 법원의 사건 처리 지연은 결국 국민이 받아들여야 할 변화의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 일각에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란 솔직한 평가도 있다. 과거 새벽 야근의 연속 끝에 아스팔트 위에서 기절했다는 30대 초반의 배석판사, 쉰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주6일 근무와 야근을 일상 삼는 어떤 판사들의 책임감에 의해 근근이 버텨온 곳이 그동안의 법원이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이름 앞 수식어조차 빈껍데기 된 지 오래다. ‘판사 선출제’를 공개 언급하며 겁박하려 드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대표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결을 위해 취임 후 강력하게 추진해온 10년 만의 법관 증원법이 여야 정쟁에 밀려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조 대법원장은 궁여지책으로 ‘법원장 재판’을 도입했는데, 이는 다른 법관들에게 더 열심히 일해 달라고 촉구하는 상징적 의미 수준이다.

 

조 대법원장은 2월 기자간담회와 최근 인터뷰에서 대안 중 하나로 “배석판사는 3∼5년, 재판장은 10년으로 최소 법조경력을 이원화하는 방식”의 법원조직법 개정을 화두로 던졌다. 국회가 2013년 도입한 법조일원화는 여러 법조직역에서 다양한 사회경험이 있는 사람만을 판사로 선발하는 제도다. 내년부터는 법조경력 7년, 2029년부터는 10년 이상이어야만 판사가 될 수 있다.

 

대학 4년과 로스쿨 3년을 마친 뒤 변호사시험을 통과하고, 10년가량의 법조경력을 쌓아 40대 이후에나 첫 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20년 넘게 재판을 해온 50대 중반의 한 1심 판사는 “저같이 어린 나이에 들어온 판사들이나 소위 가스라이팅 당해서 늘 공적인 책임감에 짓눌려 사는 것”이라며 “자유로운 사회생활을 하다 40대에 법원에 들어오는 판사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의 1심 합의부는 경륜 있는 재판장 1명이 젊은 배석판사 2명을 도제식으로 교육하며 상호보완하는 형태로 운영돼 왔다. 배석판사는 재판장 밑에서 방대한 기록과 법리 검토, 자료조사 및 정리, 판결서 초고 작성을 도맡는다. 서울중앙지법은 중견급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형사합의대등부를 운영하다 올해 2월 폐지했는데 여기에는 ‘배석판사 공백’으로 인한 여러 현실적 문제가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10년 가까운 법조 경력을 쌓고 아이를 둔 중년의 신임 법관에게 과거 배석판사와 같이 주6일 근무에 새벽 야근, 철저한 도제식 수련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적인 관념론에 불과하다. 심지어 기존에 변호사 월급보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까지 말이다. 한 중견 법관은 “지금 판사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양육, 여가, 노후준비라는 인간적 욕망이 거세된 ‘이상적 존재’”라면서 “자유로운 변호사로 성공적인 10년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 뭐하러 법원에 오겠느냐”고 말했다.

 

모든 판사가 법조경력 10년 이상이 있어야만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퍼블릭 마인드를 갖춘 사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 되고, 이를 낮추면 “전관예우와 후관예우가 더 심해질 것”이며 “탁상공론인 판결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2021년 이탄희 전 의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 반대 연설은 실증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현실은 도외시하고 관념만을 좇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룩한 구호 같다.

 

1764년 해부학을 연구하던 일본 의원(醫員)들에게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서 (병을)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며 준엄하게 꾸짖었다던 한 조선통신사 의원의 호언장담이 떠오른다.


장혜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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