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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서사에 정치·사회이슈 버무려… ‘스토리 비빔밥’ 세계가 반하다 [심층기획-한국문학, 세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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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7-03 06:00:00 수정 : 2024-07-04 15: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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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부커상 최종후보

한강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첫수상 이어
황석영 ‘철도원 삼대’ 등 최종후보 올라
시집·어린이도서 부문도 줄줄이 낭보
작품성 인정 속 판권 러브콜도 쏟아져

한국문학 주목받는 이유

“미시·거시 함께 아우르는 특수성 매력”
번역가 양성 등 민간·정부 협력 성과도
공감 소재로 작품 지속적 생산 필요성
번역 아카데미 ‘대학원’ 전환도 시급
철도원 삼대를 통해 유장한 한국 근현대사를 풀어낸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최근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에 아쉽게 실패했다. 그럼에도 한국 작가의 작품이 영국 최고 권위의 부커상에 3년 연속 최종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3월 특집 기사를 통해 드라마와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부터 화장품, 음식, 문학까지 한류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며 “차세대 한류는 한국문학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이 세계무대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학 한류의 도입기에서 성장기로 진입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해외의 많은 출판사가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고, 실제 한국문학 작품의 현지 판매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작품성을 인정받는 각종 해외문학상에서 잇따라 낭보를 전해 오거나 유력 후보가 되면서 세계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한국문학이 각광받는 것은 다양한 개인들의 이야기 속에 사회 및 역사가 다채롭게 담겨 있는 한국문학 자체가 갖는 독특한 매력에, 민간과 정부 간 협력 및 지원 시스템이 점차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당당한 주체로 확고히 자리 잡기 위해선 매력적이고 수준 높은 작품, 언어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번역(가) 역량의 제고, 국내 독서문화의 활성화, 인프라 및 생태계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종 문학상 선전… 세계인들 주목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한국 작가의 다섯 번째 작품이었다.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전신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한국 작가 최초로 수상한 데 이어, 2018년에는 그의 다른 소설 ‘흰’이 최종후보에 올랐다. 2022년에는 정보라의 SF호러 소설집 ‘저주토끼’, 지난해에는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차례로 최종후보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셨다. 더구나 순문학으로 관심도 확대된 모양새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힐 만큼 권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영국을 넘어 영어권 나라 전역으로 알려지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혜순의 시집 ‘날개 환상통’은 지난 3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했고,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2024년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한국문학 작품은 2012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맨아시아 문학상을 받은 이래 해외 유수의 문학상을 받거나 후보에 올랐다. 아동문학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수지 작가는 2022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 그림책 부분에서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이금이 작가가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문학 잡아라” 거세지는 러브콜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한국문학에 대한 러브콜은 점점 거세지는 양상이다. 한국 작품으로서 첫 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수상 직후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무려 40여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다. 최근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린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역시 일본과 대만, 스페인, 태국 등 세계 10여개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이다.

최근 펭귄랜덤하우스UK는 올해 말까지 영국에서 모두 6권의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펭귄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 ‘더블데이 북스’의 편집 총괄 제인 로슨은 한국 언론을 만나서 “한국문학 번역본을 읽은 젊은 독자들, 나아가서 한국 드라마와 K팝에도 관심이 있는 세대가 자기 문화권 밖의 문화에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해외 출판사들의 한국문학 작품 번역 출간도 급증세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해외 출판사가 우리 문학을 출간하겠다며 번역 지원을 요청한 건수는 2014년 13건에서 지난해에는 무려 281건으로 10년 만에 20배 이상 폭증했다. 이와 함께 한국문학이 초기 세계무대에 노크할 당시 주로 정부 주도의 기획번역이 주종이었다면, 지금은 해외 출판사들의 자발적인 번역 출간으로 확 바뀌었다. 글로벌 작가의 기준인 ‘인세 2만달러’가 넘는 국내 작가도 두 자릿수에 이른다.

◆현지 판매도 급증… 최소 27종 1만부 이상

해외 현지 판매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번역을 지원한 한국문학 작품의 판매 실적을 추적 조사한 결과, 한국문학 작품이 해외에서 무려 185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총 41개 언어권에 걸쳐 776종의 한국문학 작품이 번역원의 지원을 통해서 외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 가운데 5000부 이상이 팔린 작품은 총 60종이고, 27종의 경우 누적 판매 부수가 1만부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22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는 2022년 한 해에만 해외에서 2만부 넘게 팔렸다. 이외에도 누적 판매 부수 1만부 이상 기록한 작품으론 손원평의 ‘아몬드’(일본어), 김언수의 ‘캐비닛’(영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이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은 10개 언어권에서 30만권 이상이 팔린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독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최근 일본 도쿄 중심가 신주쿠에 위치한 대형 서점 ‘기노쿠니야’ 본점에 ‘한국 소설’ 코너는 물론 에세이 코너에 한국 작품만 따로 모아놓은 ‘한국 에세이 섹션’도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한국문학을 일본에 적극 알리고 있는 ‘쿠온’의 김승복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일본에서 한국 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흐름”이라고 전했다. 홍콩의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11월 기사에서 “한국 현대문학은 중국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드 배치로 불거진 지속적인 한·중 외교 갈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작은 이야기와 큰 이야기 조화”

해외에서 한국문학이 각광받는 것은 우선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영국 출판사 ‘그란타북스’의 편집자 대니얼 버드는 지난해 방한 당시 “사적인 작은 스토리에서 사회적 현상이나 정치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한국문학에 세계 출판사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해, 미시와 거시를 함께 아우르는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주목했다. 올해 부커상 심사위원들도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 대해 “부당해고에 항의해 공장 굴뚝 위에서 시위하는 이진오라는 인물의 렌즈를 통해서 일제강점과 해방이라는 복잡한 민족사 이야기를 노동계급의 정치적 투쟁 서사와 결합해 보여준다”며 “서구에서 보기 힘든, 한국에 관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작품”이라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민간과 정부 간 체계적인 협력 및 지원 시스템이 오랫동안 작동하면서 문학 한류가 이제 안정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세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학은 한 사회와 집단, 시대를 가장 온전히 담은 장르이지만 반드시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다른 문화로 확산한다”며 “지난 30여년간 일관되게 한국문학 번역(가)을 지원·양성해온 것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바야흐로 ‘한국문학 작품의 출판 증가→독자 및 리뷰 증가→문학상 수상→작가 선인세 증가→다시 출판 및 독자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성, 번역 역량 제고돼야

전문가들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한 주역으로 당당하고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매력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작품들이 더 많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많은 세계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나 모티브이면서도 한국적 매력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번역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러 해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에게 데보라 스미스, 김혜순 시인에겐 최돈미 시인이 있듯이 좋은 한국문학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좋은 번역(가)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커상 같은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기 위해선 ‘도착어에 능숙하면서 출발어에 대한 문화 및 언어 이해도도 높은’ 3세대 번역가들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번역 아카데미의 번역대학원 전환도 시급하다.

이와 관련, 곽 전 원장은 “향후 수년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다음 단계를 밟느냐가 이른바 K문학, K컬처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3세대 번역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번역 아카데미의 번역대학원 전환이 시급하고, 시장 주도의 번역을 인정하면서도 좋은 작품의 체계적 번역을 위한 기획번역도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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