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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대선 앞 연준 의장 괴롭혀
신흥국 ‘금리 내려라’, 수장 경질까지
국내 당정대 조기 인하 대놓고 압박
독립성 훼손 땐 인플레 재앙 못 피해

“한국은행은 정부에 독립적이지만 미 연준으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2년 전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후 한 발언이다. 과거 남대문출장소로 불릴 정도로 정부가 장악했던 한은은 1997년 한은법 개정 이후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키워왔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의장이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을 쥐락펴락한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와 통화정책은 연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연준조차 11월 대선을 앞두고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는 “대선 전 기준금리를 낮추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올 2월에도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해 대선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을 돕는 금리 인하를 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트럼프는 재선되면 금리결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야심도 노골화한다. 두 달 전 친트럼프계 공화당 의원 20명은 연준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트럼프 경제브레인들도 금리 결정 때 백악관 협의나 대통령 동의를 받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준이 한은의 남대문출장소 시절로 퇴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트럼프는 집권 시절 거꾸로 파월이 금리 인하를 거부한다며 숱한 비방과 험담을 퍼부었다. 그는 2018년 7월부터 “경제가 성장할 때마다 금리를 올린다”, “미치광이”,“멍청이” 등 막말을 해대더니 그해 말 파월을 해고하려고도 했다. 이듬해 대선이 다가오자 한 달 사이 20차례나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파월은 트럼프의 재선 패배로 화를 모면했지만 이번에는 앞날을 장담하기 힘들다. TV 토론의 압도적 승리에 이어 피격사건까지 터진 후 트럼프 대세론이 퍼지고 있지 않은가.

신흥국도 중앙은행 수난이 끊이지 않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한 달 전 약 3년간 긴축기조를 이어가던 중앙은행 총재를 향해 “국가에 해를 끼친다”고 비난했다. 4∼5년 전 인도와 튀르키예에서는 총리가 중앙은행 수장을 경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국 역시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뜨겁다. 최근 한 달여 동안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에서 “금리는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한덕수 총리),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었다”(성태윤 대통령 정책실장), “당 대표자가 되면 금리 인하 논의를 주도하겠다”(원희룡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며 선제적 금리 인하 요구가 분출했다. 민생을 보듬어야 할 정치인의 처지는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오랜 고금리 탓에 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비명이 터져 나온 지 오래다. 지난 한 해 폐업한 사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자영업자 연체액도 3월 말 기준 약 11조원이다.

이 총재도 “차선을 바꾸고 방향 전환(금리 인하)할 상황이 조성됐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섣부른 금리 인하가 화를 키울 수 있다.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고 가계대출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환율 불안도 잦아들 기미가 없다.

아르헨티나나 튀르키예처럼 중앙은행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다가는 경제가 파탄 날 수 있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자 교훈이다. ‘전설의 인플레이션 파이터’라 불리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도 재선을 노리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닦달에 금리를 낮췄다. 물가가 다락같이 올랐고 볼커는 다시 초긴축조치를 단행하며 경제 고통을 키우는 우를 범했다. 그는 인플레 전쟁에서 이기려면 “긴축의 칼을 과감하고 크게 휘두르고 쉽게 넣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한은도 독립성에 걸맞은 충분한 실력을 갖췄는지 자성해야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 한은도 중소기업 자금줄에 숨통을 틔우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운용하는데 그 한도가 작년 말 30조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원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추세와 거리가 멀고 자영업자 지원에 힘을 쏟는 정부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한은은 인플레 전쟁에서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해법을 찾는 정책혁신을 보여줘야 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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