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심리지원단 상담사 활동하며
동료·유가족·이재민 상처 보듬어
“이야기 듣고 곁 지키는 게 내 일
어려움 있다면 주저말고 연락을”
“소방관은 몸무게 재듯 마음 건강을 자주 살펴야 합니다.”
대형 재난이나 참혹한 사고 현장에 쉽게 노출되는 소방관은 몸 건강만큼 마음 건강을 잘 살펴야 한다. 119긴급심리지원단 동료상담사인 박지숙(39·사진) 경북 예천소방서 소방장은 도움이 필요한 소방관의 마음 건강을 돌본다.
소방에 입직하기 전 5년간 전문 상담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박 소방장은 2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현장은 직접 겪은 사건 당사자 말고도 지켜보는 가까운 사람까지 심각한 장애를 겪을 수 있다”면서 “특히 동료와 친구가 죽어가는 참혹한 상황을 직접 경험한 경우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소방청이 지난해 실시한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 결과 소방관 10명 중 4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수면장애,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근무하면서 PTSD를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노출된 평균 횟수는 5.9회였다.
박 소방장은 “처음 상담사로 발령받았을 때 동료들이 저를 자주 찾겠다 싶었는데 ‘난 문제가 없다’며 ‘다른 직원을 살펴보라’고 서로 지목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면서 “여전히 소방 조직에서 상담을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전문 상담사이지만 마음 건강이 나빠졌다 싶을 때는 다른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다”면서 “같은 동료에게 상담받는 게 꺼려진다면 외부 기관을 연계해 주기도 해 어려움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 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박 소방장은 재난 현장에서 이재민과 유가족의 마음 건강도 돌본다. ‘독도 소방헬기 추락 현장’과 ‘포항 대규모 지진’, ‘문경 화재 소방관 순직 사고’, ‘예천군 수해 현장’…. 경북의 크고 작은 재난 현장에는 항상 박 소방장이 있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간 현장에서 모텔 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박 소방장은 “사실 제가 하는 건 크게 없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며 “어떤 분은 제가 건넨 명함을 꾸깃꾸깃해질 때까지 주머니에 갖고 있다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 ‘아직도 명함을 가지고 있다’며 보여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료를 잃은 슬픔,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모습이 가슴 깊이 남아 있다”면서 “‘당시 많은 힘이 됐다’며 가끔 연락을 주시는 분이 있는데 반대로 힘을 받는 것 같아 감사하고 먹먹한 마음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박 소방장은 전화상담도 한다. 이 때문에 밤낮, 휴일에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동료상담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존재로는 ‘가족’을 꼽았다. 같은 소방공무원인 남편과 네 살짜리 쌍둥이 자녀가 박 소방장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방 조직이 좋은 게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의 힘듦을 잘 알고 정서적 지지가 많이 된다”면서 “상담사로서 역할을 잘 해내 미약하게나마 조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두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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