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시설원예 등 많아 피해 커
“빈번해진 폭우 피해로 의욕 꺾여”
“밤낮없이 일했는데 남은 것 빚뿐”
영암·예천군 등 곳곳 쑥대밭 변해
농민들 “재해보상금 현실화” 강조
“보시다시피 올해 수박농사는 폭삭 망했어요. 출하예정일이 오늘부터였는데 이번 집중호우로 비닐하우스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25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 비닐하우스 11개동 7260㎡에서 ‘굿뜨레 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상필(60)씨는 “팔순이 넘는 아버지와 함께 땅에 의지해 평생 농사를 지어왔는데, 빈번해진 폭우 피해로 하늘을 원망하는 부모님 모습에 삶의 의욕마저 꺾이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노화리에서 비닐하우스시설원예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한 청년농부는 “3년째 여름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로 부농의 꿈은 수장되고 삶은 엉망진창이 됐다”며 울먹였다. 그는 “부농을 꿈꾸며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밤낮없이 일했는데, 남은 것은 빚밖에 없다”며 “귀농을 말리던 지인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여군의 농작물 피해가 심각한 것은 충남도 전체 시설원예의 42%, 스마트팜 50%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벼농사 등 무논은 침수 피해가 있더라도 벼 이삭이 펴기 전이면 물이 빠진 뒤 다시 생육을 시작해 수확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시설원예는 침수가 되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수박·멜론·토마토·오이 등의 시설원예 작물은 한 번 물이 차면 뜨겁게 달아오른 하우스 안에도 뿌리부터 잎까지 한순간에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지난주 일주일 넘게 집중호우가 쏟아진 전남지역도 300㏊에 달하는 농작물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침수 피해 농작물의 91%는 벼였다. 전남 진도, 완도, 해남, 고흥 등에서 벼 침수 255㏊, 콩 11㏊, 사료작물 10㏊ 등 총 280여ha의 농작물이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무화과 주산지인 영암에서는 지난 20일 새벽 시간당 35㎜ 비가 내리면서 무화과나무들이 흙으로 뒤덮이는 피해를 입었다. 영암에서 무화과를 키우는 김모씨는 “무화과는 물이 닿으면 바로 무름병이 와서 수확을 절대 하지 못한다”며 “무화과 농사만 10년 넘게 지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피해 농민들은 “재기할 수 있도록 재해보상금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시설물 피해는 100% 나랏돈으로 복구가 이뤄지는데, 사유시설은 피해금액의 70%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피해금액 대비 턱없이 부족한 피해복구 지원금이나, 재해보험 보상금을 현실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폭우 피해 농민들을 돕기 위한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부여군 수박 피해농가 비닐하우스에는 새벽부터 충남 홍성군 자원봉사센터에서 달려온 40여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예산군보건소 직원 정소연(28)씨는 “아버지와 함께 자원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연차휴가를 내고 왔다”며 “상상했던 것보다 농작물 피해가 엄청나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한낮 수은주가 34도까지 올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던 24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넘쳐났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사방댐 현장은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서 작업에 나선 근로자들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한 근로자는 “마을 주민들이 아직도 비가 내린다고 하면 낯빛이 사색이 되더라”면서 “더는 폭우에 주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대한 꼼꼼하고 안전하게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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