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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김민기 선생 작고
미움·설움도 넉넉한 품에 안고
모두 위로하는 ‘뒷것’으로 살아
묵묵히 자기의 길 걸어간 어른

영원한 청년, 김민기 선생이 지난달 세상을 떴다.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이 빛에 스며 사라진 것이다. 선생은 마음의 설움이 거친 광야를 헤쳐갈 수 있는 에너지임을 일깨웠던, 우리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하며 서럽게 눈물 흘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가 얼마나 든든한 스승이었는지 짐작이 되어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침이슬은 작디작다. 태양이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존재감을 주장하지 않는 그 이슬이 진주임을 발견한 이는 사라져 가는 일이 두렵지 않은 이고, 사라져 가는 존재의 힘을 알고 있는 이다. 자세히 들여다볼 줄 아는 그는 설움조차 미소로 바꾸는 연금술사다. 삶의 묘미는 역시 연금술이고 내게 그는 삶의 연금술사였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아침이슬’은 금지곡이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노래가 왜 금지곡이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모임의 마지막은 ‘아침이슬’이었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권력이 붙인 ‘금지’딱지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배웠던 것 같다. 금지가 오히려 각인이 되는 삶의 차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 시절 그 노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할 때의 묘한 해방감! 그 해방감을 함께 느끼며 우리는 또 연대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7080시절 선생은 서정적 저항의 상징이었다. 저항은 단순히 거스르려는 반동적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른 상록수처럼 자기를 지키는 일이었고, 묘지 위를 붉게 타오르는 태양처럼 거스를 수 없는 에너지였으며,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는 아이처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그는 통기타를 사랑했고, 자본이 주인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인, 인간의 무대에 사랑했으며, 끝까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피상적인 삶을 살지 않는 사람, 한낮에 찌는 더위의 시련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많은 제자를 키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무려 4천회가 넘는 공연을 올리며 대학로 대표 뮤지컬이 되었단다. 조선족, 가출소녀, 청소부, 실직가장, 저마다 사연을 지닌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로 삶의 노래, 이슬의 노래를 만들어낸 그는 1990년대 말 서울의 풍경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이게 했다.

노래에서 무대까지 문화운동, 노래운동의 상징이었던 그는 존재감 없는 사람들의 존재가 우리 정서의 뿌리임을 잊지 않도록 조용한 “뒷것”으로 살았다. 도대체 뒷것이란 무엇인가? 선생은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제자들에게 “나는 뒷것이고, 너희가 앞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알겠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왔고 제자들을 대했는지. 그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울타리가 되어 인간을 키운 넓은 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겠다. 왜 그를 “자신을 잣대로 남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는지. 독재정권 시절 모진 시련을 당했으면서도 그는 적을 미워하는 동료들, 후배들에게 이렇게 위로했다고 전한다. 너무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게 되면 닮게 된다! 그렇게 다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줄 알았던 선생은 어른이 드문 세상, 어른이 가져야 할 품을 가르쳐 준 진정한 어른이었다.

뒷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다.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비움이 없이는 뒷것이 될 수 없고, 자신을 빈 곳으로 내줄 줄 아는 이는 남의 평가와 상관없이 조용히 자기 길을 간다. 그는 그의 길을 사랑했고, 묵묵히 그의 길을 갔고, 길 위에서 만난 제자와 동료들을 묵묵한 그 마음으로 대했을 것이었다. 그와 함께 ‘지하철 1호선’도, 그 무대가 되었던 학전도 사라졌으니 새삼 사람이 세계였음을 확인한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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