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인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의 원인 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현장이 찍힌 CCTV를 보면 차량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불길이 퍼진 상황에서 소방용 설비를 통한 초기 진화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규모를 키웠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6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쯤 서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으나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현장 CCTV와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화 지점을 중심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화재 직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며 “정확한 미작동 원인에 대해선 추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발화점 주변을 제외한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프링클러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불을 완전히 꺼뜨리지는 못하더라도 불길이 번지거나 주변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8일 오후 7시 24분쯤 전북 군산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차된 쉐보레 볼트EV 차량에 불이 났을 당시엔 스프링클러가 작동, 45분 만에 꺼졌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당시 소방 당국이 촬영한 영상에는 주차장 천장 쪽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끊임없이 물이 분사되는 모습이 담겼다.
반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된 인천 전기차 화재의 경우 차량 140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연기 흡입 등으로 2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주차장 내부 온도가 1000도 넘게 치솟으며 지하 설비와 배관 등이 녹아 정전과 단수가 발생하는 등 국내 전기차 화재 중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인천과 군산의 전기차 화재 모두 소방 장비 투입이 제한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했고 연기가 분출돼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에 대해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리튬배터리를 제외한 부품들은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로 어느 정도 진화될 수 있다”며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가 초기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특성상 배터리팩에 불이 나면 화염 방향이 위로 치솟는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수평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데, 화재 현장 CCTV 영상과 사진에는 발화점인 벤츠 전기차 주변으로 차량이 빼곡히 주차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차량이 밀집한 상황에서 불이 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발화점으로 지목된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EQE 세단이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 에너지'의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해당 전기차에서 배터리팩 등 주요 부품을 분리하는 작업을 거쳐 정밀 분석을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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