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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시대정신] 빠니보틀과 곽튜브의 ‘형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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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12 23:12:33 수정 : 2024-08-12 23: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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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나라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
한국서 일했던 고단한 기억들을
각자 삶의 추억과 역사로 만들어
일제 때 광복을 꿈꿨던 우리처럼…

200만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과 곽튜브에게는 두 외국인 형님이 있다. 먼저 곽튜브를 보자. 그에게는 어몽 형님이 있다. 3년 전 러시아 서북단 무르만스크에서 혼자 낚시를 하던 곽튜브는 우연히 만난 현지인에게 도움을 받는데 그가 바로 어몽 형님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람인 어몽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위해 무르만스크에서 막노동을 하며 혼자 살고 있었다.

당시 곽튜브는 지금과 달리 무명에 가까웠다. 퇴사 후 전업 여행 유튜버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 사태를 맞은 불안한 청춘이었다. 고민 많은 20대 한국인 청년과 어딘가 외로워 보이던 40대 러시아 이주노동자의 만남. 이 낯선 조합이 묘하게 아련하고 따뜻했다. 3개월 후 두 사람은 우즈베키스탄, 어몽의 고향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이때 만들어진 영상들이 큰 주목을 받으며 대형 유튜버 곽튜브를 만든 계기가 된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빠니보틀은 올해 초 방영된 여행 프로그램 촬영 중 스리랑카에서 한 형님과 인연을 맺었다. 에랑카 형님이다. 에랑카는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에 왔다가 허탕 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우연히 들린 한국어가 너무 반가웠다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의 입에선 “안녕하십니까”에 이어 “영천” “전주” 등의 한국어가 쏟아져 나왔다. 십여 년 전 경북 영천에서 일했다고 했다.

불쑥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준다. ‘내 나이가 어때서’와 ‘칠갑산’이다. 요즘도 마늘과 생강을 넣어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는 그에게 한국은 한때 청춘을 바쳐 일했던 그리운 곳이다. 지갑을 잃어버렸지만 한 푼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한국 경찰이 찾아준 놀라운 곳이기도 하다. 즉흥적으로 사흘간 함께 여행한 두 사람은 다음을 기약했고, 빠니보틀은 약속을 지켰다. 몇 달 뒤 직접 뚝뚝을 몰고 에랑카의 시골집에 찾아갔다.

곽튜브와 어몽 형님, 빠니보틀과 에랑카 형님의 영상에 공통으로 달리는 댓글이 있다. 영상을 통해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충전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우정에는 나이도 국적도 직업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 온 시간도 중요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통하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대화의 절반은 이해와 배려로 채워졌다. 평생을 전혀 다른 배경으로 살아온 이들이 타지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이어간다는 동화 같은 서사에서 나는 유튜브의 ‘희망편’을 본다. 양극화를 부추기는 사이비 저널리즘과 사이버 레커들의 무법지대 속에 다친 인간애를 회복한다.

특히 흥미로운 건 이들의 영상 속에 뜬금없이 들리는 한국어다. 빠니보틀이 찾아간 스리랑카 산골 마을에선 논산에서 일했다는 청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자연스레 해장국 이야기가 오간다. 곽튜브가 머문 우즈베키스탄의 빠야렉 마을은 한국어 능력자들이 한가득이다. 젊은 시절 한국에서 일해 고향에 집을 짓고 차를 샀다는 ‘부자’ 아저씨들이 처음 본 한국 청년을 격하게 반긴다. 대구 사투리로 “동싱아(동생아) 잘 있나”를 연발하는 오리뽀 형님은 어몽 형님과 더불어 곽튜브 콘텐츠의 인기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어몽 형님은 친구 오리뽀와 함께 최근 한국에 왔다. 곽튜브의 초대로 서울과 부산, 제주도 등지를 여행하고 있다. 첫 만남 무렵부터 추진했던 한국 방문이지만 이뤄지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농촌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소득 증빙이 쉽지 않아 비자를 받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결국 한 방송사의 도움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이들의 눈을 통해 한국을 다시 본다. 태어나 바다를 처음 본, 파도를 처음 본 사람의 눈에 비친 제주 바다는 신비롭다. 비가 귀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 경험하는 장맛비는 결코 축축하거나 눅눅하지 않다.

이들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기 때문일까. 유튜브가 관련 영상을 하나 추천해줬다. 유재석이 진행한 토크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는 47년 전 독일에서 일했던 파독 광부 어르신이다. 곽튜브와의 첫 만남 때 어몽 형님이 한 말이 있다. “나라가 가난해서 다들 외국에 나가 일하고 있지.” 불과 반세기 전 한국이 그랬다. 어느덧 70대가 된 청년 광부의 회고를 듣는다. 모래가마니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리던 체력 심사, 낯선 땅에서 낯선 우유를 먹고 겪었던 배앓이, 지하 1000m 갱도 안 40도에 육박했던 열기. 위험하고 힘들수록 많은 수당을 주기에 앞다퉈 자원했던 한국인들.

전화도 쉽지 않았다.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그리움을 달랬다. 한국 노래가 나오는 라디오 방송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나지막이, 그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고국 간단다. 쨍하고 해뜰날 한국 간단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어몽 형님이나 에랑카 형님의 이야기가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님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빛을 되찾은 날, 광복절을 앞두고 있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도 언젠간 해뜰날이 오리라 믿었던 굳은 마음들이 있었다. 독립을 이루고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이룬 선열들, 선배들 얘기다. 그 고됨을, 오늘의 귀함을 자꾸만 잊는 것 같다. 그래서 빠니보틀과 곽튜브의 두 형님 이야기가 더 소중하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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