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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타기 좋아하는 아버지 따라
19살 생일날 해변으로 간 아들
생각지 못한 광경 보게 되는데…
성장통 같은 낯선 경험 했을까

톰 행크스 ‘마르스 해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수록, 부희령 옮김, 책세상)

 

이 소설집을 쓴 작가가 톰 행크스, 그 배우라고? 의아해할 것 같다. 맞다.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타자기의 열렬한 애호가이며 수집가인 톰 행크스. 그의 첫 소설집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2015년부터 책을 출간하기 전까지 여행하거나 영화 일정을 소화할 때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거의 매일 쓴 단편들이 수록돼 있다. 자기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룬 배우가 소설을 쓴다고? 그렇게 가졌던 미심쩍은 마음은, 역시 배우 이선 호크의 장편소설들을 읽은 후부터 완전히 버렸다. 게다가 톰 행크스의 책은 소설집이어서 장편보다는 덜 상업적이며 더 문학적일 거라는 편견이 작동했고.

조경란 소설가

아는 분이 외국에서 온 딸 부부, 어린 손자들과 얼마 전 해변에 갔다가 고생한 경험을 전화로 들려주는 동안 해변, 그 뜨거운 모래사장과 바다, 파도가 떠올랐다. 해변이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영화와 소설들도. ‘마르스 해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도 있었다. 해변에서는 무슨 일인가 생긴다. 그게 아니면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더러 평생을 가기도 한다. 어린 내가 개방된 장소에서 부모의 숨겨줄 수도 덮어줄 수도 없어 안타까웠던 가난을 처음 깨달은 곳도 해변이었다. 여름의 해변. 거기에는 삶에서도 소설에서도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오늘은 커크의 열아홉 살 생일이다. 아버지 프랭크는 젊었을 때부터 파도타기를 좋아했고 가장이 된 이후로는 일과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변에 던져두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이었다. 부자는 모처럼 집에서 가까운 마르스 해변에 가서 파도를 타기로 했다. 남서쪽으로부터 너울이 올라오고 있으니까. 커크가 처음부터 아버지와 무언가를 같이 하길 좋아했던 아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에게서 멀어지기를 바랐던” 어머니와 누나들이 제 갈 길로 떠나버린 집에서 지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건 그를 지지하며 “등을 두드려주는” 일과 같아졌다. 아버지는 말했다. 사업 때문에 전화 몇 통을 걸어야 해서 커크 혼자 물속에 한 시간쯤 있게 될 거라고.

 

여기 서두까지, 단편에서 갖춰야 할 요소들이 거의 다 나왔다. 아들과 아버지라는 인물, 마르스 해변이라는 중심 공간, 하루인 시간, 그리고 아들 혼자 물속에 한 시간쯤 있게 될 상황까지. 그래서 여기까지만 읽었는데도 이 소설에 대한 신뢰감이 커진다. 작가는 더 중요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왜 다른 해변이 아니고 ‘마르스’ 해변인가 하는 공간의 인과도. 아무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책벌레 커크에게 청소년 시절부터 파도타기를 해왔던 이 해변은 자신이 자신을 시험하는 장소이자 또 다른 데서와 달리 “잘해낼 수 있는 일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목, ‘마르스 해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득 이 ‘환영’의 의미는 무엇일까? 짚어보다가 그런 짐작이 든다. 톰 행크스는 이미 두 번째 소설집을 쓸 만한 준비가 돼 있는 작가라는.

 

능숙하게 파도를 타다가 프랭크는 커크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사인을 보내곤 사라진다. 형태가 잘 만들어졌지만 괴물처럼 엄청나게 크고 변덕이 심한 파도. 커크는 자신의 보드에 부딪혀 한쪽 다리가 찢기는 상처를 입은 채 해변으로 밀려 나왔다. 캠핑카 안에서 전화를 걸고 있어야 할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커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유칼립투스 나무 그늘에서 커크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열아홉, 생일 아침 해변에서 커크는 그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것은 약간의 충격과 소외감과 상실, 혹은 원치 않는 변화처럼 독자에게도 보인다. 어떤 눈뜸의 순간, 성장통은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 것처럼.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와 그들은 파도와 해변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향한다. 커크에게 이제 마르스 해변은 그 이전의 해변이 아니다. 이제는 영원히 마르스를, 아버지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르스 해변은 커크를 진짜 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 넓은 인식으로서의 환영을. 다만 그것이 조금은 아프고 낯선 경험을 통해서일지라도.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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