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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오키나와 슈리성의 생로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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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25 22:57:49 수정 : 2024-08-25 22: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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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화재로 복원 작업 한창
작업 진행 상황 영상으로 공개
문화재의 생명 연장 과정 보니
인생 질서와 비슷해 묘한 감동

2019년 10월 화재로 정전 등 주요 건물이 전소된 일본 오키나와 슈리성은 지금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의 편리를 위해, 또 현장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가건물로 들어가면 자재, 작업 도구 등과 작업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주재료인 나무는 어디서 가져왔고, 그것을 엮어 골격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한다.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이제 어느 정도 골격은 갖춘 것으로 보이는 슈리성 모습이다. 오키나와와 그 일대 섬을 아우른 류큐왕국의 상징인 슈리성의 지금 장식이나 칠을 하지 않아 벌거숭이 같다는 느낌도 들어 온전하진 않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중인 슈리성은 완성된 것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고, 복원작업이 2년 후 마무리될 예정이란 점에서 ‘기간 한정’의 관람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특별하다.

문화재는 박물관이나 잘 정비된 유적지에서 주로 만나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일 거란 기대를 흔히 한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많은 노력, 정성을 기울이지만 문화재 역시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것은 대체로 서서히 진행되지만 슈리성처럼 급작스러운 마지막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15세기 궁궐의 모습을 처음 갖춘 것으로 추정되는 슈리성은 2019년 화재 이전 네 번이나 전체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복원이 이뤄진 결과가 현대인들이 아는 슈리성이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생로병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올해 1월 발생한 강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노토반도 일대의 문화재들도 생존의 큰 위기에 마주한 경우다. 이시카와현 스즈시에서는 지진으로 나무들이 뽑히면서 경사면에 노출된 고훈시대(3∼7세기) 고분이 많아졌다. 그대로 두었다간 부장품이 훼손되고, 호우 등에 의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 이시카와현에 따르면 국가 지정 14건, 현 지정 11건, 시정(市町) 지정 35건 문화재 피해가 보고됐다. 이에 따라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문화재 구조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에도시대(1603∼1868년) 노토반도 지역에서 약상, 포목상 등을 운영한 유력자의 옛집에서 고문서 등을 다수 확보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인력, 재원 등의 부족으로 정부의 보다 전면적인 관심,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슈리성, 노토반도처럼 ‘문화재 생명연장’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활동은 여러 가지다. 특성상 비공개로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 잘 모를 뿐이다. 번듯한 문화재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게 쉽지도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화재 보존과 복원, 수리 등과 관련된 활동을 제한적으로나마 공개해 관심을 환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슈리성은 바로 그런 사례다.

우리 주변에도 적잖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바른 콘크리트를 떼어내 외관을 정비하고, 구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20년간 진행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는 작업 말미에 현장을 일반에 공개했다. 2008년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을 다시 세울 때는 작업자들에게 전통 복장까지 입혀 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광화문 광장을 정비하면서는 땅속에 파묻혀 있던 조선시대 유구의 형태와 의미를 설명하는 자리를 갖고는 했다.

이런 현장에서 느끼는 감상은 잘 관리돼 번듯한 모습의 문화재를 볼 때의 그것과 제법 다르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끝내 사라지는 질서에서 수백년, 수천년의 세월을 견뎌낸 문화재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칠 때 묘한 감동이 있다. 상처를 치유하고 노화를 억제할 방법을 두고 이어지는 치열한 고민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애정이 깊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륵사지 석탑이 그렇다. 보수작업을 끝내고 대중에 공개되었을 때 석탑을 보면서 그 전에 취재를 위해 보수작업 현장에서 본 모습이 겹쳐져 특별하다. 지금의 슈리성을 본 사람이 2년 후 제모습을 찾은 슈리성을 만나면 사뭇 다른 감회를 느끼지 않을까. 문화재를 즐기는 색다른 방식이자 그것이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머물게 하는 비결이지 싶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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