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지·시청 행위 처벌 규정 없어
“성인피해자, 법 사각지대… 고소 꺼려”
‘외관상 미성년자’ 법망 구멍 악용도
“합성인데 왜” 인식 만연… 형량 낮아
위장수사, 성인 범죄로 확대 급선무
“딥페이크 범죄 처벌법 일원화 필요”
‘딥페이크’ 성범죄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했지만 딥페이크 범죄를 처벌하고 예방하기 위한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디지털 성범죄 관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처벌 조항에 이어, 올해 1월 선거범죄 관련 공직선거법 처벌 조항이 시행됐으나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가 상존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딥페이크 범죄 관련 법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처벌 미미하고 처벌 ‘공백’까지
딥페이크 범죄 현황은 처벌 조항이 있는 디지털 성범죄와 선거범죄를 기준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허위 영상물’의 편집·합성·가공·반포 등에 대한 처벌을 못 박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8은 딥페이크 영상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같은 법 250조 4항에 처벌 규정이 있다.
2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2021년 42명 △2022년 36명 △2023년 29명 △2024년 1∼6월 17명에 그쳤다. 지난달까지 공직선거법 제82조의8을 위반해 기소된 경우는 아직 없다.
매우 미미한 숫자인데, 수사기관 통계로 드러난 딥페이크 성범죄 현황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윤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피해자 지원 기관들의 상담이나 지원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라며 “나중엔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가 일반적인 성폭력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딥페이크 성범죄 우려가 크지만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는 높지 않다. 성폭력처벌법상 허위 영상물 편집·합성·가공·반포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인데도 실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드물다. 이승우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사실 피해자들이 고소를 주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벌이 가벼운 건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과 맞물려 있다. 허위 영상물 편집·합성·가공·반포죄의 양형 기준은 기본 징역 6개월∼1년6개월이다. 가중해도 징역 10개월∼2년6개월이다.
특히 성인 피해자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허위 영상물을 단순히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데다, 제작한 경우라도 반포 목적이 입증되거나 반포까지 했어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이 직장 동료들 사진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든 남성에 대해 반포 목적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한 사례가 있다.
이승우 변호사는 “지금 가장 애매한 부분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라며 “아동의 경우엔 제작 또는 소지만 해도 처벌된다”고 설명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다.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경우에도 법망을 빠져나갈 처벌 공백은 존재한다. 한 20대 남성은 2021년 미성년자인 여성 연예인 얼굴을 다른 여성의 신체에 합성한 딥페이크 음란물을 시청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최근 서울중앙지검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검찰은 “본건 영상물로 확인되는 등장인물의 신체적 모습에 비춰 의심의 여지 없이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정도라고 보긴 어렵다”고 불기소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판례상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등장인물의 신원이나 신체 발육 상태, 외모, 영상물의 출처나 제작 경위 등을 고려해 외관상 명백히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경우여야 한다. 등장인물이 어려 보인다는 사정만으로는 안 된다. 검찰은 “성폭력처벌법 허위 영상물에 해당할 여지는 있다”면서도 “허위 영상물을 단순히 시청·소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고 법적 한계를 지적했다.
◆“인식 개선, 법적 정비를”
전문가들은 우선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수사·사법기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혜진 변호사는 “아직은 ‘합성이고 진짜 찍힌 건 아니잖아’, 이런 인식이 좀 있다 보니 법정형이나 형량이 낮다”고 꼬집었다.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위장·잠입 수사, 이른바 ‘신분 위장·비공개 수사’를 성인 대상 범죄로 확대하는 것도 급선무다. 현재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에 국한된다.
성범죄 등 딥페이크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법을 통일할 필요성도 있다. 이승우 변호사는 “가해자 연령층이 낮더라도 AI 관련 범죄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며 “음란물이든 아니든 (당사자) 동의 없는 합성을 다 처벌하되, (피해자가) 아동·청소년, 성인인 경우를 구분하지 말고 통틀어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딥페이크 중 처벌해야 하는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인 최경진 가천대 교수(법학)는 “케이스가 다양할 텐데 처벌이 필요한, 심각한 케이스를 일단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예를 들면) 실존하지 않는, 아이 같아 보이는 사람의 이미지로 만든 경우도 처벌해야 할지는 고민이 좀 필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AI 대응을 위한 법제 정비는 필요하고, 분야마다 규제 수준이 다르니 법이 여러 개 있을 수도 있다”면서 “자칫하면 검열법이 될 수 있는 점에 유의해 입법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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