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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이면 군 장병들이 수해복구를 하는 사진이 매일 신문에 실리곤 했다. 축사가 무너지고 비닐하우스가 내려앉은 농가에서 장병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토사를 퍼내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장마 기간뿐 아니라 모내기 철에도, 지역 축제 기간에도 군의 대민지원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이런 ‘대민지원’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장병들은 여전히 수해현장을 찾아 피해복구에 나섰지만 언론에 공개하는 횟수는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 아마도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 것이 아닐까 싶다. 장병들이 왜 모든 현장에 동원돼야 하는지 의문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채 상병 사고 이후 국방부는 무분별한 대민지원은 제외하도록 훈령 개정 작업도 진행 중이다.

구현모 외교안보부 기자

작년까지만 해도 각 군은 자신들의 대민지원을 홍보하느라 분주했다. 작년 7월15일부터 19일까지 5일 동안 공식적으로 보도자료·사진을 낸 것만 12건이다.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토요일에도 각 군 당국자들에게 주민들을 구조하거나 대피시키는 사진 등을 기사화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대민지원으로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정도다.

해병대의 활약을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해병대 1사단은 2022년 힌남노 태풍으로 포항 지역에서 물난리가 났을 당시 수륙돌격장갑차(KAAV)로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하며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포항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해병대 1사단장을 직접 격려하기도 했다. 당시 1사단장은 지난해 채 상병 사고를 둘러싼 책임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성근 소장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한 방식으로 실패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휴브리스의 함정이라고 부르는데 휴브리스란 말은 그리스어로 자만심이란 뜻이다. 당시 임 소장은 유력한 차기 해병대사령관 중 한 명이었다. 1사단장은 진급이 유력한 자리라 김계환 사령관도 1사단장 출신이고 직전 사령관인 김태성 전 사령관도 1사단장 출신이다. 여기에 포항 물난리 당시 보여준 활약은 그에게 더 강한 확신을 주지 않았을까.

지난해 채 상병과 해병대원들은 안전장비도 없이 범람한 하천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1사단 공보장교는 임 소장에게 해병대원들이 수중수색을 하는 사진이 실린 언론 기사를 스크랩하며 보고했지만 임 소장은 “훌륭하게 공보 활동이 이루어졌구나”라며 칭찬을 할 뿐이었다. 왜 구명조끼도 없이 물에 들어갔는지 묻지 않았다. 사고 이후 수사를 받을 때는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는 말을 탄원서에 적기도 했다.

재해·재난 전문가도 아닌 군 장병들이 구조, 수색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지휘관은 얼마나 될까. 어떤 훈련을 받아왔는지,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봤는지 묻고 싶다. 대민지원으로 인한 국민의 박수와 격려를 자신들의 성과로 인식한 것 같다.

결국 군은 그들이 성공한 방식으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니 정부도, 군 수뇌부도 장병들을 언제든 동원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꿨으면 좋겠다. 장병들의 안전이나 권리를 도외시한다면 대민지원은 결코 성공 방정식이 될 수 없다.


구현모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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