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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있었던 몇몇 행사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북콘서트가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지정 학교로 향했다. 고교 시절의 내가 떠오른 탓이었다. 당시 나는 마음에 자갈이 박힌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다. 고2 때 수업 진도가 모두 끝나고 고3 시절 내내 모의고사 문제집만 풀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시절을 잘도 건너왔구나. 나는 낯선 학교의 교문을 통과해 어쩐지 조금도 낯설지 않은 구도의 복도와 교실을 지나쳐 강당으로 향했다. 빼곡히 깔린 의자 너머 낮은 단상 위로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늘이 저희 학교 ‘독서의 날’이거든요.” 낭독극 준비를 하고 있던 선생님 중 한 분이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종일 책 관련 활동만 해요.” 하루 종일 책을? 문제집을 푸는 게 아니라? 나는 리허설을 하는 학생들―대본을 맞춰보는 진행자와 타이밍을 재는 영상담당자, 낭독극 순서를 확인하는 출연자들과 각자 맡은 코너를 연습 중인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생기 있는 목소리들이 올망졸망 엮이는 걸 듣고 있자니 어깨가 조금 펴졌다. 똑같을 리가 없지. 나는 먼지를 털어내듯 어두운 마음을 탈탈 털어 저멀리 밀쳐냈다.

행사 도중 문장 하나가 마음에 꽂힌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얘기했던 소설에는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대사가 있었다. 삶이 결코 녹록지 않은 소설 속 인물이 버림받은 개에게 손을 내밀며 건네는 대사였다. “누군가 당신에게 ‘밤은 내가 가질게’라고 말해온다면 당신의 대답은?” 대충 이런 식의 질문에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겁거나 재치있거나 경쾌한 답들을 적어냈다. 그 속에 이런 대답이 있었다.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세상에, 이토록 당당한 목소리라니.

그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다정한 말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타인에게 손을 내밀 때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를 다감하게 감쌀 수 있는 대사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오직 부드러움뿐이라고, 위로와 배려와 무한한 애정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다잡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어떤 좌절과 고난 속에 내던져져 있든 다름 아닌 자신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우선되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사람이라면 당당히 대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밤을 왜 니가 가져? 나는 얼마든지 내 밤을 낮으로 바꿀 수 있어.”

나는 학생이 쓴 답이 너무 좋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되뇌었다. 이처럼 단단한 마음이라니, 이처럼 단단하고 야무진 미래가 내 눈앞에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올여름에 대한 보상을 전부 다 받은 것 같았다. 언젠가는 그런 인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아주 단단한 인물이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며 “내 밤을 왜 니가 가져?”라고 따져묻는 소설을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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