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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에게 질문을 받았다. “우리는 어떤 고기를 안 먹을까요?” P씨에게도 질문을 받았다. “하노이는 한국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그녀들에게 질문을 받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우리만 질문했다. 한국 생활은 어떠냐고, 내 말을 이해했냐고 물었다. 그녀들도 질문했으나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지, 신청서류는 무엇인지 정도의 서비스 이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랬던 그녀들이 이날만큼은 ‘네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내가 알려주마’ 자신 있게 질문을 던졌다. 신선했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K씨는 자신이 중국의 56개 민족 중 하나인 ‘회족’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민족이라며 마을에 있는 오래된 회당 사진을 보여줬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의 설명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P씨도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도 맛깔스럽고 재치 있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야기 중간중간마다 질문을 던지고 응답자를 치켜세우며 자신의 수업을 이끌어갔다.

이날은 이중언어강사와 다문화강사 취업 교육 마무리로 발표회가 있던 날이다. 강사교육과 훈련과정에서 지도받은 덕이겠지만 18명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긴장했지만 표정이 밝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어쩔 수 없이 질문을 ‘당하고’ 해답에 끌려갔다. 단상에 세우니 심사위원도 청중으로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결혼이민여성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교육을 준비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취업 교육이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취업이 절실한 사람은 생산직이든 서비스직이든 이미 무슨 일이든 하고 있는데 장시간 소요되는 교육과 훈련에 참여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예상과 달리 19명이 신청을 했고 총 54회 교육을 다 마치고 18명이 수료했다. 발표를 들어보니 진심으로 참여한 것 같다. 이렇게 도전할 만한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사람이 남아 있었나 보다.

취업을 전제로 한국어를 배우니 눈이 더 반짝였고 토픽 모의시험도 마다치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도록 표현과 발음에도 공을 들였다.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고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린다고 생각하니 용기도 나고 사명감도 생긴 것 같다. 보기 좋았다.

결혼이민이란 그늘에서 만난 탓일까? 그녀들이 실력과 재능을 잊고 있었다. 타국의 질서와 논리 속에서 펼치지 못한 것들이 많았겠구나! 그날에야 반성했다.

앞으로 취업으로 이어질까? 그건 여전히 불투명하다. 분명한 것은 이제 개인이 살아낸 각각의 미시사가 듣는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할 거라 장담한다. 그녀들의 다문화수업이 아시아의 살아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취업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만큼 바라는 것이 있다. 이제 그녀들의 단상에 서기를 바란다. 가정에서도 센터에서도 마을에서도 자신의 단상에 서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주도하는 삶이 되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은, 누군가 단상을 내어줘야 가능하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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