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의 외국인 좌완 웨스 벤자민(31)은 2024시즌 막판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체력이 소진된 벤자민은 9월 이후 5경기서 평균자책점 10.80을 기록할 정도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이런 벤자민의 부진은 5위 결정전을 뚫고 포스트시즌(PS) 와일드카드에 진출한 KT 입장에서도 고민거리였다. 지난 2일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의 역투 속에 정규시즌 4위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을 4-0 승리로 장식한 이강철 KT 감독은 2차전 선발로 벤자민을 낙점했다. 유독 가을 야구 큰 경기에 강했던 벤자민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다. 벤자민은 KT에 합류한 2022년 이후 PS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86의 좋은 모습을 보였다.
벤자민이 승리를 가져오는 역투를 펼치면서 믿음에 제대로 보답했다. KT는 벤자민의 맹활약을 앞세워 ‘0%’의 확률을 깨는 마법사 군단의 면모를 보였다. KT는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시즌 KBO리그 PS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에서 두산을 1-0으로 꺾었다. 전날 1차전도 승리로 장식해 최종 2차전으로 시리즈를 끌고 간 KT는 5위 팀으로 역대 최초로 4위 팀을 꺾고 준플레이오프(PO∙5전 3승제)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썼다. 지난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도입된 뒤 처음 나온 기록이다.
‘선발 왕국’ KT의 투수전이 시리즈를 가져왔다. 두산 타선은 KT 투수들의 호투 속에 맥없이 무너졌다. 1차전 쿠에바스(6이닝 4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에 이어 이날 2차전에선 벤자민이 펄펄 날았다. 벤자민은 7이닝을 책임지며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자랑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진 벤자민은 88개의 공을 뿌리면서 최고 시속 150㎞의 직구(22개)를 비롯해 슬라이더(39개), 커터(17개), 체인지업(6개), 커브(4개) 등 다양한 구종으로 두산 타선을 요리했다. 이날 벤자민에 이어 나온 ‘토종 에이스’ 고영표(1이닝 무실점), 박영현(1이닝 무실점)도 호투하며 팀 완봉승을 완성했다. KT는 와일드카드 22이닝 연속 무실점의 신기록도 이어갔다.
투수진의 역투 속에 KT의 결승타는 강백호가 책임졌다. 강백호는 6회 찾아온 1사 3루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산 불펜 이병헌의 4구째 직구를 밀어 쳐 적시타를 터뜨렸다.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한 강백호는 1차전에 이어 2경기 연속 멀티 히트를 작성했다. 지난해 부상으로 가을 무대를 밟지 못한 아쉬움을 제대로 날렸다.
4위 이점을 안고 한 경기만 승리하면 준PO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승엽 감독의 두산은 타선이 부진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두산의 방망이는 와일드 카드 시리즈 내내 차갑게 식으면서 1∼2차전 18이닝을 모두 무득점으로 마친 충격적인 최초 기록도 남겼다. 1차전 안타 7개 생산에 그치고 무득점 했던 두산은 이날 2차전에선 안타를 단 3개만 뽑아내며 더 부진했다. 두산 입장에선 타선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베테랑’ 양의지가 쇄골 통증으로 결장한 게 뼈아팠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경기 뒤 “우울하고 마음이 아프다”며 두 경기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 것이 컸다”고 아쉬워했다.
생존 경쟁서 살아남은 KT는 이제 LG와 준PO를 치른다. 지난해 한국 시리즈(KS) 트로피를 놓고 맞붙었던 두 팀은 1년 만에 준P0에서 만나게 됐다. 당시 LG가 4승 1패로 29년 만에 KS 우승을 차지했다. KT는 작년의 악몽을 잊고 LG에게 설욕을 벼른다. 두 팀의 준PO 1차전은 5일 오후 2시 LG홈인 잠실구장에서 열린다. 올 시즌 상대 전적은 LG가 9승 7패로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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