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일본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전략산업에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은 보조금이 단 한 푼도 없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어제 보고서에서 승자독식 양상을 보이는 첨단산업에서 가격경쟁력과 기술력 확보에는 보조금 정책이 효과적인데 한국의 지원수준이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날로 격화하는 첨단기술경쟁에서 우리만 낙오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반도체 패권전쟁은 국가대항전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에 총 527억달러를 지급하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법)을 2022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기 위해 2023년부터 대표 기업 SMIC에 2억7000만달러 규모 보조금 지급을 시작했다. 일본도 연합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 설립에 63억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이차전지 등에서도 미국은 부품의 최소 50% 이상 북미지역에서 생산·조립한 경우 보조금을 지급한다. 중국과 일본도 오래전부터 자국 기업에 보조금과 연구개발 특별자금 등을 쏟아붓고 있다. 그 사이 한국 배터리 기업은 시장점유율이 최근 2년 새 7%포인트 이상 떨어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액정표시장치(LCD)도 중국의 보조금살포 탓에 망가진 지 오래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누가 되든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는 더 독해질 텐데 걱정이 태산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당선 때 배터리와 자동차, 철강이 타격을 받고 전체 대미수출도 위축된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보조금 공세가 이어지고 철강과 화학, 반도체 등의 교역조건은 나빠질 것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범국가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법·제도적 지원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기업들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홀로 뛰도록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는 한경협의 조언을 경청해 과감한 직접지원책을 모색하고 미·중·일처럼 일원화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 최소한 반도체설계와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스타트업에 보조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회도 반도체지원 특별법과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첨단산업 지원은 ‘대기업 특혜’, ‘부자 감세’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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