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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든 나무들 사이로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예쁜 10월29일, 오후. 나는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세계작가와의 대화-실비 제르맹’ 강연에 참석했다. 평소에 그녀의 글쓰기 자세와 시각을 좋아한 데다 이번 ‘박경리문학상’ 수상도 축하할 겸.

강연장으로 가면서 내가 읽은 그녀의 책들을 떠올려 보았다.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전면에 깔고 홀로코스트와 그 긴 광기의 그림자가 한 사람에게 어떻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듯 주인공의 궤적을 따라 풀어나간 ‘마그누스’, 한 거인 여자를 내세워 전쟁이라는 묵시록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 특히 1942년, 게토 거리에서 나치의 총에 죽은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를 비롯해 전쟁이란 이름으로 죽어간 영혼들을 불러내 고통과 연민의 전율과도 같은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쓴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등등.

한마디로 말하면 그녀는 “적절한 때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다른 시대가 오면 허구가 된다”는 것을 절감한 듯 역사적 감각을 잃고 역사적 외로움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그녀만의 독특한 언어와 문체로 인간에게 저질러진 불의와 폭력,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비참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내면에 깃든 악과 고통의 의미를 끊임없이 모색, 탐구하는 작가다.

강연은 ‘페르소나주’를 번역한 류재화 교수와 함께 문답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언어의 음향에 민감한 작가답게 질문자의 질문에 신중히 경청하는 태도와 낱말 하나하나를 허술히 흘려보내지 않는, 언어에 대한 아주 민감한 섬세함과 재치가 돋보이는 대담이었다. 대담 도중 자주 언급되는 팔레스타인 시인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와 ‘사탄의 태양 아래서’를 쓴 조르주 베르나노스와 W. G. 제발트 등은 나도 좋아하는 작가들이라 그녀의 성향과 내 성향이 일치하는 부분엔 나도 모르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더 마음에 드는 건, 강연장을 꽉꽉 채운 젊은이들이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그녀의 글을 참 좋아하는구나. 내심 고맙고 반가웠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책이나 실비 제르맹의 책에는 너무도 쉽사리 악과 한패가 되어 인간이 인간을 무참히 살해한 인간 광기의 역사, 그 아픈 역사를 앞으로 어떻게 사유하고 직시하고 넘어서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 애도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여 나는 젊은이들이 이 책들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비록 그 이면에는 그녀의 말처럼 “진흙 속에 뒹구는 개털같이 구역질 나는 영혼들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을지라도.

강연장을 나오며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는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 구절,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읽어라, 그래야 발견할 것이다”를 입속으로 되뇌며 아, 나도 더 많이 사유하고, 읽고, 쓰자고, 10월의 서늘한 밤하늘을 향해 크게 기지개를 켰다.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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