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한 톨도 오래 씹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지듯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다. 인생이나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깨닫고 모든 사람에 항상 겸손하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
약 150년간 계속된 일본의 내전과 혼란을 종식하고 에도막부 평화의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며 남긴 말이다. 도쿠가와는 천하통일을 이루기까지 오랜 세월 인고(忍苦)의 중요성과 함께 정치권력에 대한 깊은 통찰과 마음의 자세를 강조했다. 하찮게 보이는 보리 한 톨도 소중한데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백성을 위한 정치에 있어 권력자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를 아들에게 일깨워 준 것이다.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실망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채 이전투구에 빠진 모습이다. 여야 협치를 통한 나라의 성장과 안정은커녕 끝없는 정쟁으로 혼란과 국민불안을 가중시켜 그야말로 연일 전국(戰?)시대를 연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1심 판결 이후 “비명계가 움직이면 죽이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정치인임에도 ‘친명 완장’을 차고 홍위병 노릇만 자행하는 행태가 참으로 경악스럽다. ‘누구를 살해하겠다’는 그의 섬뜩한 발언은 정치인의 말이라고 믿기 힘든 범죄 수준의 협박이다. 이런 저급한 정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조속히 사라져야 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같은 당 정동영 의원이 피감기관에 대한 겁박과 망신주기로 ‘갑질’의 전형을 보여줬다. 정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 대상 국감에서 검찰, 경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 공무원 17명을 증인으로 불러 일렬로 줄을 세운 뒤 “언론장악의 교두보”라며 모욕했다. 마치 뭔가를 잘못한 초등학생들을 세워 놓고 나무라듯 방통위에서 이들이 맡은 업무와 지시 라인을 추궁했다. 정 의원은 “여러분은 정권의 도구”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정 의원도 민주당의 일개 도구에 불과한 것인지 묻고 싶다. 행정 일선에서 맡은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수많은 공무원들에 대한 모욕이자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사기를 꺾는 비겁한 처사라고 할 수 있겠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무슨 권리로 국감에 출석한 공무원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마구 호통치고 훈계하고 모멸감을 주고 군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인가. 선출직 면책특권을 남용해 ‘슈퍼갑’ 우월의식에서 공무원들을 한참 아래 ‘졸(卒)’쯤으로 여겼다면 민주국가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도 모르는 것이다.
‘내 권리는 타인의 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춘다’는 서양 격언처럼 누가 누구의 부하도, 상사도 아닌 평등한 인격체라는 점을 알기 바란다. 우리 정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의원들 스스로 전근대적 구태정치와 권력 남용을 멈추고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민들이 맡긴 소명(召命)에만 집중하면 된다. 보다 품격 있는 언행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통해 하루빨리 우리 정치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감동을 줄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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