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개입 의혹’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아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받은 예비후보자들에게 “나한테 맡기고 가만히 있으면 당선된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명씨의 공소장을 확인한 결과 명씨가 경북 고령군수와 대구시의원 예비후보 A씨와 B씨에게 이같이 발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명씨와 A씨, B씨는 2022년 6월 해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명씨가 사실상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 측에 각각 1억2000만원씩을 주고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씨는 2021년 5월 말쯤 경북 고령군에 있는 A씨 사무실에서 A씨와 B씨로부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고령군수와 대구시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명씨는 유력 정치인 등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공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명씨와 같이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영선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이 자리에서 명씨의 말에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며 A씨와 B씨에게 명씨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믿게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명씨는 실제 2021년 6월 초 A씨를 국민의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의 지방분권정책기획위원회의 위원으로, B씨를 여의도연구원의 청년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게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후 명씨는 2021년 8월11일 A씨 사무실에서 A씨와 B씨에게 “서울, 수도권에 있는 시장도 아니고 시골 군수나 시의원 그거 뭐라고, 발로 차도 공천이 된다. 오히려 당선되려면 선거운동도 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놓고 가만히 있으면 당선된다”라고 말하며 공천 대가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의원은 A씨와 B씨가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2021년 10월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캠프였던 ‘국민캠프’ 조직총괄본부 국민민생안전특별본부 본부장 자격으로, A씨를 경북본부장으로, B씨를 대구본부장으로 선임되게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명씨와 김 전 의원은 2022년 보궐선거에서 김 전 의원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일과 관련해 김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였던 강혜경씨를 통해 같은 해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6차례에 걸쳐 8070여 만원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의원은 2022년 6월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명씨의 정치적 영향력이 자신의 공천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 2년 후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명씨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세해 자신이 공천 받기를 기대하며 국회의원 세비 절반을 명씨에게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명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말고도 많은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일명 ‘황금폰’을 포함한 자신의 휴대전화 3대와 USB 메모리 1개를 자신의 처남에게 주면서 숨기도록 하면서 증거은닉교사 혐의도 추가돼 기소됐다.
검찰은 미래한국연구소 등기상 대표인 김태열 전 소장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 부분에 대해 비공표 여론조사 중 일부 수치가 조작되고 표본이 과대·과소 집계된 정황을 포착하고, 구체적인 혐의 적용에 대한 법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명씨의 창원국가산단 선정 개입 의혹, 국가산단 지정 인근 부동산 투기 의혹도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의혹을 폭로한 강씨에 대해선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강씨의 변호인단은 “이 사건은 기소로만 그쳐서는 안 될 사안으로, 본질은 명씨의 여론조사 및 여론조사 조직을 통한 선거·경선 조작”이라며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관여된 많은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따라야만 이 사건의 실체에 닿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씨는 지난 3일 기소 직전 변호인을 통해 “검찰은 미래한국연구소 실소유주가 명태균이라는 증거를 단 1%로 제시하지 못했는데도 저를 기소해 공천 대가 뒷돈이나 받아먹는 잡범으로 만들어 꼬리 자르기에 들어갔다”며 “특검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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