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외교 결정권자, 헌법 따라”
美정부 “韓 대화주체 尹” 밝혔지만
사실상 궐위 상태… 각국 관망 중
주한 美대사는 조태열 외교 만나
‘韓·韓 국정운영’ 합법 여부 질의
“예측불가 국가 이미지 탈피 시급”
北 군사도발 대응 등 취약한 상황
트럼프와 협상 때 약점 작용 우려
‘있지만 없는’ 대통령을 둔 한국의 대미 외교가 말 그대로 막혔다. 양국은 한·미 간 동맹·외교 소통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고 있지만, 답답한 속내는 감춰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 거취가 확실해지고, 권력 이양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는 누구와 어떻게 외교 협의를 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어서다. 대통령의 권한과 임무를 법적·정치적으로 대행이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당일 한·미 핫라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 외교적 신뢰를 다시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10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누가 한국을 대표하는지 우리도 모르고, 미국 등 밖에서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며 “그런 사람이 있어야 외교부나 장관이 대외활동을 할 때 말의 권위가 살아나는데 그게 불가능한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등 절차가 있고 난 뒤에 국무총리 대행 체제로 법적으로 넘어오는데 이 과정이 멈춘 채 통치권이 불투명하니 아무도 한국을 상대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평가다. 전 교수는 “주변국에 불안정하고 예측성 떨어지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줬다”며 “물 한번 엎지르기는 쉬워도 지금은 담을 수가 없다. 한 방울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는 이날 외교 최종 결정권자 관련 질문에 “외교 분야 포함한 정부 국정 운영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틀 내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권한 행사의 주체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측 대화 상대가 현재 누구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이라며 “한국 내 정치적 절차는 당연히 한국의 법률과 헌법하에서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 윤 대통령을 ‘식물대통령’이라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 교수는 “사실상 궐위 상태로 통치권 행사를 못하는 대통령이 자리에 있는데, 대한민국 군통수권은 오직 대통령만 갖고 있다”며 “장관 등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당장 군사적 대응 태세가 발생하면 미국이 누구와 협의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한국의 상황에 미국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 교수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보장하는 일종의 후원 동맹국이고 책임을 갖고 있다 보니 한국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며 “흔히 동맹 사이에선 서로 놀라게 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있는데, 불균등한 동맹국인 한·미 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고 계엄 전후는 물론 지금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불투명하니 미국이 굉장히 불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8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정부·여당이 내놓은 ‘한덕수·한동훈 공동국정운영 체제’(한·한 체제)에 대해 헌법에 부합하느냐는 취지의 의문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도 미국이 연일 엄청난 실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봤다. 신 회장은 “과도기하에서 안정적으로 한·미동맹을 비롯한 외교 문제를 충격 없이 다음 정부에 넘겨주는 것이 지금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한·미 양국 모두 권력 이양기에 들어간 셈이 됐는데, 이번 사태로 한국이 노출한 매우 취약한 국내 상황은 여러 외교·안보 협상 테이블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커졌다. 주한미군 철수를 방위비 분담금 협상 단골 카드로 꺼내 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한국이 취약한 순간이 없고, 이는 북한의 군사 도발 관련 위험도 증가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역시 위태로워졌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이미 한국을 정부 교체기로 보고, 사실상 관망 모드를 취하며 차기 정부에 대한 대비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 회장은 “미국은 바이든 현 정부와 차기 정부인 트럼프 팀 모두 한국에서 새로 들어설 정부에 대한 조사를 하고 다음 한국 정부와 어떻게 외교를 만들어가야 할지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며 “실행단계에서는 큰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미동맹 자체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한·미동맹은 정권을 초월한 문제라는 점을 잇달아 강조하고 있다. 이날도 밀러 대변인은 한국 내 정치적 혼돈 상황이 한·미 간 외교 협의에 미칠 영향을 질문받고 “한·미동맹은 여전히 철통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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