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붐 타고 데이터센터 수요 몰려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 70% 차지”
‘데이터 밀집’ 수도 워싱턴과 근접
구글 등 빅테크 회사들 증축 경쟁
주정부, 인센티브 강화… 투자 유도
전기 먹는 하마… 전기료 인상 우려
환경문제로 지역사회와 갈등도
데이터가 폭증하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서버, 데이터 저장 드라이브 및 네트워크 장비 등을 보관하는 물리적 시설) 구축 경쟁이 전 세계에서 치열하다. 지난 10월 발간된 맥킨지앤컴퍼니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현재 추세를 반영할 때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 수요가 적게는 연평균 19%, 크게는 연평균 27%나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수요를 감당하려면 2000년 이후 구축된 데이터센터의 최소 두 배를 그 절반의 시간 동안 구축해야 한다.
특히 기술 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증축을 위한 노력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접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지역 빅테크(거대기술) 기업들의 높은 수요로 전통적 데이터센터 허브 역할을 해온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오리건 포틀랜드뿐 아니라 달라스(텍사스), 시카고(일리노이), 애틀랜타(조지아) 등 중·남부를 가리지 않고 미 전역에 데이터센터가 증설되고 있다. 특히 동부에서는 199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버지니아 북부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문제는 전력 공급이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빠르게 데이터센터를 증축하려 해도 안정된 전기 공급이 쉽지 않다. 미국 내 전기 공급이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지역에 시설을 보충해가며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지만 워낙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엄청난 전기 사용량에 환경 우려도 적지 않으며 지역 주민들과의 충돌도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증설을 둘러싼 버지니아의 상황은 데이터센터 증축 경쟁을 하고 있는 세계 각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제2의 전성기 맞은 ‘데이터센터 앨리’
22일(현지시간) 찾은 버지니아 라우든카운티 애쉬번의 구글 데이터캠퍼스(데이터센터 밀집 시설)에는 서버 냉각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증기 기둥이 선명히 치솟고 있었다. 구글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8년 구글은 버지니아주 라우든카운티에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2019년 12억달러를 들여 카운티 내 두 개의 데이터센터 중 1단계 건설을 완료했는데 이 데이터캠퍼스가 그중 하나다.
정식 지명은 아니지만, 이곳은 주변에 여러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모여 있어 데이터센터 앨리(Data Center Alley)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도 워싱턴으로부터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애쉬번 지역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구획된 여러 기업의 데이터센터와 그 옆으로 설치된 변전소 등이 대로를 중심으로 사방에 퍼져 있는 가운데 한쪽으로는 여전히 농장 등 농촌 지역의 모습이 남아있다. 도시 중심부엔 각 기업에 모여든 기술 인력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편의시설도 눈에 띄었다.
버지니아 주의회 내 합동 입법 감사 및 검토 위원회의 이달 초 데이터센터 증설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최소 70%가 버지니아 북부의 데이터센터를 거친다. 라우든카운티에 데이터센터가 처음 들어선 때는 1996년이다. 당시 빠르게 성장하던 인터넷 회사 아메리카온라인(AOL)이 이곳에 첫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이후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회사뿐 아니라 여러 정보통신(IT) 기업들이 2000년대부터 이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했다.
구글은 웹페이지에 애쉬번 데이터캠퍼스를 소개하며 버지니아 라우든카운티에 대해 “에너지 인프라, 개발 가능한 부지, 운용 가능한 인력 차원에서 적절한 조합을 가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수도 근처의 안정적인 전기 공급과 에너지 인프라, 데이터 밀집 지역인 수도 워싱턴과의 근접성에 더해 AI 시대로 접어들며 최근엔 전통의 라우든카운티뿐 아니라 인근 프린스윌리엄카운티, 페어팩스카운티 등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확장되고 있다.
마크 그리빈 버지니아 주의회 데이터센터 보고서 프로젝트 책임자는 공영방송 NPR에 북부 버지니아의 데이터센터 증설로 워싱턴의 ‘고객’들이 빠른 서비스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선 빅테크 기업들의 가장 큰 고객은 연방정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방정부의 데이터 관련 프로젝트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 것뿐 아니라 데이터센터가 주변에 있으면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프로젝트 수주, 즉 대관 업무에도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버지니아 주정부는 지역적 특성을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기회 요인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는 지난해 AWS가 2040년까지 350억달러(약 51조원) 규모 데이터센터를 증축한다고 발표하며 이는 버지니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이고, 주 전역에서 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버지니아 주정부는 ‘메가 데이터센터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마존 한 회사에만 지급되는 보조금이 최대 1억4000만달러(2043억원)에 이른다.
◆전력 공급, 지역사회와 갈등 과제
데이터센터 증설의 가장 큰 과제는 전력 공급이다. 24시간 내내 작동하는 컴퓨터와 장비에 전력을 공급하고, 이를 냉각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전기가 소비된다.
맥킨지앤컴퍼니 10월 보고서는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건설되고 필요한 전력량이 증가함에 따라 북버지니아와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등에서 전력 공급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여러 전기공급 사업자들이 전송 인프라를 충분히 빨리 구축하지 못했으며 어느 시점에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버지니아가 수도 워싱턴 근처의 안정적인 전기 공급 인프라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워낙 수요가 많은 탓에 감당이 어려운 것이다. 지역 전력 공급 회사인 도미니언에너지의 아론 루비 대변인은 공영방송 NPR의 지역방송국 WHRO퍼블릭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센터 증가로) 버지니아의 전력 수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향후 15년 동안 주거용을 포함해 에너지 요금을 10%포인트 이하 비율로 매년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 합동 입법 감사 및 검토 위원회가 이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성장이 현재 속도로 계속되면 버지니아주는 생산 전력을 현재보다 150% 늘리고, 다른 주에서 150% 수입해야 한다. 또 현재보다 변전소 증설 등 송전 능력 역시 40% 끌어올려야 한다.
2020년 버지니아 주의회를 통과한 청정경제법은 도미니언에너지가 2045년까지 주 전체 발전량을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원에서 충당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상황은 이와 거리가 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도미니언에너지가 태양광에너지·풍력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발전을 늘려가고 있지만 데이터센터 등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상업성이 입증되지 않은 소규모 원자력 발전, 새로운 화석연료 공장 증축 등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서버 냉각을 위한 대규모 물 사용과 상수원 오염, 점점 더 주거 지역과 데이터센터가 가까워지면서 생기는 소음 문제 등이 지적된다.
이에 지역사회와의 갈등은 진행 중이다. 지역 언론은 최근 버지니아 전역의 20여개 환경 단체 등이 연합해 ‘버지니아 데이터 센터 개혁 연합’을 결성해 주 정부 차원의 규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린스윌리엄카운티가 매나서스에 데이터센터 건립을 승인하자 지역 주민들이 이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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