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 수뇌부 1500쪽 분량 증언서
일제히 尹 ‘내란 우두머리’ 지목
尹 휴대전화 교체·텔레그램 탈퇴
법조계 “영장 발부 예견된 수순”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의 ‘셀프 변호’에도 법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손을 들어주며 이렇게 판단했다.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는 윤 대통령의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공수처가 제출한 수사 자료와 증거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하고 19일 새벽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하려면 우선 수사기관에 의해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내용이 담긴 위헌·위법한 내용의 포고령을 발표하고,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를 봉쇄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공수처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내란 혐의를 윤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적시했다.
법원은 구속영장에 담긴 150쪽 분량의 이번 사건 관련 핵심 관계자들 증언 등을 토대로 윤 대통령의 혐의를 판단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계엄에 가담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10명이 모두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구속된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김 전 장관 등 10명을 구속 수사한 뒤 재판에 넘겼고, 1500쪽에 달하는 수사 자료를 공수처에 전달했다. 여인형 국군 방첩사령관을 비롯한 군 사령관들과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는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다 체포하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 등의 지시를 했다고 진술하며 윤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했다.
법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유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를 들었다.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소환 통보, 체포영장 집행 등에 협조하지 않은 점이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제한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 등 경호구역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공수처와 경찰이 꾸린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3차례 소환 통보에도 불응했고 3일 공조본의 1차 체포영장 집행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전후해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인 텔레그램을 탈퇴한 점, 공수처 조사에 불응하거나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점 등도 증거인멸 우려 사유로 제시했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만큼 범죄의 중대성이 크고,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시도하려 한 정황 등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는 점도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변호인 8명과 함께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했다. 약 45분간 직접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며 스스로를 변론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거대 야당(더불어민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등으로 국정이 마비된 국가비상사태였고, 민주당의 패악을 알리는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수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요구에도 관저를 몇 날 며칠 동안 ‘요새화’하며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법원도 ‘풀어주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하급자들이 다 구속됐는데 계엄 선포를 실제 주도하고 지시한 윤 대통령만 풀어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공수처가 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은 것을 두고 관할권을 문제 삼다 결국 서울중앙지법의 체포적부심 기각과 서부지법 구속영장 발부로 구속된 만큼, 앞으로는 관할권을 문제 삼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구속적부심을 중앙지법에 청구할지, 서부지법에 청구할지를 묻는 질문에 “결정된 바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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