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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상자산 제도가 가야 할 길 ① [더 나은 경제, SDGs]

입력 : 2025-02-03 10:00:00 수정 : 2025-02-03 00: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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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환 금융위원장(사진)은 지난달 22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법인계좌와 관련해 가상자산위원회 안건에서 내용이 제외돼 추진을 안 하는 것 아니냔 얘기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입장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앞서 가상자산 산업 육성과 관련해 보여왔던 제한적 입장에서 상당히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그간 금융위원회는 법인의 가상자산 실명계좌를 허용하지 않았다. 법인의 실명계좌는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지도하며 사실상 금지해왔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가 들어서 가상자산에 매우 적극적인 미국과의 속도를 발맞출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을 볼 때 미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탠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의 정책 변화, 그리고 다른 국가의 정책 변화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가상자산 산업 육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후보 시절 앞으로 5년 동안 비트코인을 해마다 20만개씩 사들여 최대 100만개를 보유하겠다며, 비트코인의 위상을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취임 직전 ‘암호화폐 수호자’로 불리는 폴 앳킨스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을 차기 SEC 위원장으로 지명하기도 했다. SEC 위원장은 법적으로 독립적인 임기가 보장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자산 업계의 ‘적’으로 불린 기존 게리 겐슬러 위원장을 취임 첫날 해고하겠다고 공언해온 상태였다.

 

결국 겐슬러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취임 직전 SEC를 떠났고, 마크 우에다 상임위원이 권한대행으로 임명됐다. 우에다 권한대행은 가상화폐에 친화적 인물로, SEC가 가상자산 육성정책에 적극적인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이에 화답하듯 우에다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21일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면서 “현실적인 등록 경로를 제공하며, 합리적인 공개 체계를 마련하고, 집행 자원을 신중하게 배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친가상자산 정책 생산에 돌입했음을 알렸다.

 

미국 정부의 큰 변화에 한국 금융당국도 어떠한 정책 변모를 보여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3월만 해도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가 도입되려면 가상자산 관리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회가 열리게 되면 가상자산 2차 입법 논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전망하자면 하반기쯤 공론화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어 5월에는 직접 당시 겐슬러 SEC 의장과 로스틴 베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을 만나 가상자산 육성정책이 곧 제도권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SEC와 CFTC는 미국에서 가상자산 정책을 다루는 양대 기구로, 당시 이 원장은 비트코인 현물 ETF 등 가상자산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이후 금융당국은 산업 육성보다는 주로 ‘규제’와 ‘소비자 보호’에 정책의 방점을 뒀다. 실제로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후속 조치로 ‘가상자산 규율체계 안착 지원, 건전한 시장질서 확립을 통한 신뢰 회복, 불공정 거래 및 불법행위 근절 추진’ 등을 내걸면서 “맞춤형 감독을 진행하기 위해 가상자산의 특성을 반영한 시장 및 사업자에 대한 상시감시체계를 구축한다”고 강조했었다.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만큼 산업 육성과 거리가 먼 소비자·투자자 중심이다.

 

SEC가 지난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고, 자산운용사 11곳의 거래 개시를 승인한 것에 반해 한국은 여전히 규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상황이다. 미국 정책과 대비해 적어도 1년 이상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기준 코스피의 하루 거래량은 9조~9.5조원, 코스닥은 7조원 내외지만, 3개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에서는 14조~15조원이 거래됐었다. 금융당국과 감독당국은 가상자산의 실체를 두고 자본시장법이 규정한 ‘기초자산’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더는 육성정책을 외면하기만은 어려운 현실이다.

 

아직은 현행 가상자산 법과 제도가 소비자 보호에 맞춰져 있지만, 이른 시일 내 입법을 보완해 투자자 불확실성 해소와 더불어 산업 육성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가 곧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친가상자산 정책이 속도를 내면, 이미 제도를 정비 중인 토큰증권(STO) 산업과 블록체인 산업 발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이미 가상자산을 토큰화(tokenization)된 지급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최근 급격한 경기 악화로 국내 많은 기업이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데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존을 위해 규제보다 ‘지원’과 ‘성장 촉진’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금융투자 부문 옴부즈만,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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