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 승선한 139t 저인망 어선
정부 해상사고 방지책 나흘 만에
전복 당시 강풍·풍랑주의보 발효
기상악화 추정… 해경, 원인 조사
실종자 해상·수중 수색에도 총력
14시간 만에 선체 추정 선박 찾아
파도 높아 고속단정 전복되기도
생존자 4명 뗏목 타고 있다 구조
강풍·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전남 여수 하백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 장소로 이동중이던 어선이 전복돼 5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잇단 어선 사고로 어민들의 ‘안전 불감증’은 물론 나흘 전 ‘해양 선박(어선) 사고 인명 피해 방지 대책’을 내놓았던 정부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여수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41분 여수시 삼산면 하백도 동쪽 약 17㎞ 해상에서 부산 선적 139t급 대형 트롤(저인망) 어선 ‘제22서경호’가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신고가 선단 다른 어선으로부터 접수됐다. 트롤 어선은 긴 자루그물 양측에 날개 그물이 붙어 있는 어구를 활용해 해저 부근에 있는 어류, 갑각류 등을 잡아 올리는 선박이다. 보통 5척으로 선단을 이뤄 조업하는데 서경호에는 한국인 선원 8명과 외국인 선원 6명(베트남인 3명·인도네시아인 3명) 등 14명이 승선해 있었다.

해경은 신고 접수 직후 경비함정 23척과 항공기 8대, 유관 기관 7척, 민간 어선 15척 등 가용선박을 총동원해 구조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사고 발생 2시간 만에 한국인 4명과 외국인 4명 등 승선원 8명을 발견했다. 구명 뗏목에 타고 있던 선장과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해상 표류 중 발견된 한국인 선원 2명은 사망한 상태였다. 생존한 외국인 선원 4명은 저체온 증상을 보여 전남 고흥군 나로도 축정항을 거쳐 여수 종합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한 선장과 생존 외국인 선원 4명은 구명 뗏목에 타고 있다가 해경에 구조됐다. 한국인 사망 선원 2명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해상 표류 중 발견됐다. 실종 선원은 한국인과 외국인 선원 등 5명이다. 해경은 이날 사고 발생 14시간 만에 사고 해역 인근에서 선체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했다. 또 배 내부에서 실종자 1명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생존 여부는 알 수 없다. 해경은 선내 실종자 구조와 침몰 원인 등을 규명하기 위해 선체 인양 방안을 선사 등과 논의할 방침이다.

해경은 또 사고 발생 약 14시간 만인 이날 오후 5시쯤 사고 해역 인근에서 해군 수중 무인탐지기(ROV)를 통해 침몰 중인 서경호를 발견해 선체 내부에 있던 실종자 1명의 시신을 인양했다.
해경은 생존 선원들이 “항해 중 바람과 파도에 선체가 전복됐다”, “항해 중 갑자기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뒤집어졌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기상 악화로 선체가 전복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침몰 당시 해상에는 강풍주의보와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사고 어선은 8일 낮 12시55분 부산 감천항을 출발해 전남 흑산도 인근에서 갈치, 병어 등을 잡고 23일 낮 12시25분쯤 부산항에 복귀할 일정으로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에 조난신호를 발신하는 통신장비가 탑재된 서경호는 조난신호조차 보내지 못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경과 선단선에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 등 아무런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행방불명됐기 때문이다.
해경은 해상과 수중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 해경은 실종 선원을 찾기 위해 경비함정 23척과 항공기 8대, 유관 기관 7척, 민간 어선 15척 등을 동원해 사고 해역을 중심으로 집중 수색을 벌이고 있다. 사고 지점 인근에는 잠수부가 투입돼 있다.
이날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경 고속단정이 높은 파도에 뒤집히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해경 5t급 고속단정이 바다에서 전복되자 해경은 곧바로 다른 단정을 보내 승선한 바다에 빠진 해경 대원 6명 모두를 구조했다. 구조된 해경대원들은 다치지는 않았지만 현재 병원으로 이송돼 안정을 취하고 있다.
해경은 “선원 일부가 아직 선체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존 선원들의 진술에 따라 전복 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체 안에도 일부 실종 선원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경은 아직 행방을 알 수 없는 선체를 찾기 위해 사이드스캔 소나(SONAR·수중음파탐지기)까지 동원해 수색하고 있다.

해경은 사고 당시 해역에 강풍·풍랑주의보가 내려졌지만 30t 이상 선박은 출항할 수 있고 100t 이상 선박이 2.5m 내외 파도에 전복해 침몰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통역 등을 통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며 “해경 단정도 전복될 만큼 기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지만 나머지 실종자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달 5일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기상청·중앙전파관리소와 함께 해양 선박 사고 인명 피해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국승기 한국해양대 교수를 반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 원인 조사반을 구성해 어업인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종합대책이었다.

대책안에 따르면 우선 입·출항 미신고, 승선 인원 허위 신고 같은 불법행위가 적발되면, 어업 정지 기간을 현행 최대 15일에서 최대 30일로 늘리기로 했다.
부산 서구의 사고대책본부에 모인 실종 선원 가족들은 구조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사고대책본부와 협의 이후 사고 현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실종 선원 한 가족은 “머리가 새하얘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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