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입소 후 코로나19 봉쇄 조치
격리 생활하며 하루 1건씩 낙서 그려
SNS에서 입소문 퍼지며 유료 판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격리 생활을 하던 미국인들에게 낙서로 웃음을 안긴 아마추어 화가 로버트 시먼이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2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시먼은 그가 만년을 보낸 뉴햄프셔주(州) 웨스트모어랜드의 한 요양원에서 지난 19일 숨을 거뒀다. 고인의 딸인 로빈 헤이즈는 부친이 최근 몇 년간 만성 폐질환을 앓았고 지난해 가을 코로나19에 확진된 뒤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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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먼은 1932년 뉴욕주 스미스타운의 어느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긴 했으나 직접 창작 활동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광고와 부동산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60세에 현업에서 은퇴한 그는 비로소 ‘전업 예술가’를 표방하고 그림을 그렸다. 또 뉴햄프셔의 미술 센터에서 15년간 그림 수업 강사로 일하며 수많은 수강생들에게 인물화 기법 등을 가르쳤다.
일견 평범한 인생을 살아 온 시먼이 유명 인사가 된 것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당시 80대 후반의 노인이던 시먼이 요양원에 들어간 지 2주일 만에 방역을 위한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하루종일 방안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 시먼은 어린 시절 재미로 종이에 이것저것 끄적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최소 1건의 낙서를 한 뒤 나름의 작품 번호까지 매겼다. 그는 이를 ‘매일 낙서’(daily doodles)라고 불렀다.
나중에 낙서를 본 딸 헤이즈는 아버지의 작품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봉쇄와 격리에 지친 미국인들은 뭔가 복잡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먼의 작품에 열광했다. 낙서의 인기가 치솟자 헤이즈는 구독 희망자를 모집한 뒤 신청자들에게 아버지의 새 낙서를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구매를 원하는 이들에겐 낙서 작품의 정본 또는 사본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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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고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시먼의 낙서는 계속됐다. ‘#1727’이란 작품 번호가 붙은 그의 마지막 낙서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5일 전인 지난 14일 공개됐다. 이는 특별히 딸 헤이즈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부녀는 애호가들에게 낙서를 팔아 벌어들인 2만달러(약 2800만원)의 수익을 최근 지역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뜻밖에 유명인이 된 시먼은 코로나19 대유행 2년차인 2021년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젊어서 부동산 사업가로 일할 때에는 늘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렸는데 작심하고 전업 예술 창작자가 된 뒤 모든 불안과 우울감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만년에 낙서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에 대해선 “시간을 때우려는 이기적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니 기분이 꽤 좋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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