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란 인간 군상의 집합
생화와 조화, 진짜와 가짜
모든 존재의 양면성 채색
공존·상생… 인간 삶 은유
꽃을 그리는 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꽃을 제대로 잘 그리는 이는 그리 흔치 않다.

화면 가득 온통 꽃으로 뒤덮은 구성, 정교한 세필, 환상적이면서 다소 몽상적인 색조 ···. ‘꽃의 작가’ 박종필은 하루 16시간 동안 그림 그리기에 매달리곤 한다.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다.
그에게 꽃이란 곧 인간이다. 그는 “인간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예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의 작업에서 꽃은 인간 군상의 집합이다.
그의 꽃 회화는 다른 정물화나 풍경화에 비해서 꽃의 일부를 과장해 확대한 시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꽃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전체 구도를 잡지만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각기 독립체를 구성하는 것처럼 다양한 종을 보여준다. 그의 꽃그림은 다르다. 마치 인물화의 표정을 묘사하듯 꽃을 그려낸다. 그 표정들이 다채롭게 살아 있다. 힘차게 뻗어 오른 줄기, 탐스런 꽃망울과 무성한 잎이 싱싱하다. 자연물로서의 식물을 벗어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지닌다. 이러한 꽃들은 자연과 인간,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향해 친숙한 시선을 품어주듯이 친밀한 공간을 구성한다.

박종필은 그림을 그리기 전 진짜 꽃과 가짜 꽃을 적절히 뒤섞어 작업실에 배치한 뒤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을 봐가며 그려나가는데 나중에 완성된 작품에서 생화와 조화를 구분하기란 퍽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자연스런 결과물이 나온다.
생화는 실재하는 아름다움, 진실,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조화는 생화를 모방한 가상, 가짜, 거짓을 뜻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이 둘은 시각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실제로 시중의 조화는 생화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생화보다 더 생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조화가 생화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넘어서는 순간이다. 실재와 가상의 차이를 모호하게 한다. 그의 작품들은 이처럼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내가 보고 있는 작품 속 꽃은 생화일 수도 혹은 조화일 수도 있다. 작품 속 꽃은 이미지일 뿐이며 생화여서 아름답고 조화여서 아름답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이 둘의 교묘한 어우러짐으로 하나의 공간이 창조되고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꽃으로서, 나 혹은 당신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생화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조화인가. 이는 알 수 없으며 정의할 수도 없다. 정의할 필요 또한 없다. 모든 존재는 양면성을 가지며 하나의 의미로 규정지을 수 없다.”

지구 인구를 70억명으로 볼 때 개개인은 너무도 하찮은 존재다. 70억 송이의 꽃이 핀 정원을 떠올려보면, 그 속에 핀 한 송이 꽃을 기억하기는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그 정원 안에 조화를 꽂아 놓았다면 이를 가려내기는 극한의 어려운 일이다. 정원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인 집합체다. 송이 송이 어우러져야 정원이 된다. 그의 작품은 이 한 송이 한 송이를 면밀하게 재현해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내고야 만다. 그의 작품 안에서 꽃은 생화든 조화든 함께 공존하며 상생한다.
우리는 이 꽃들이 그냥 자연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우리의 관념과 생각, 삶의 시선을 따뜻하게 반영하려는 작가의 의도적 선택인 것을 알게 된다.
그의 회화적 표현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 섬세함 이상으로 감각적인 특징을 자아낸다. 물방울이 방금 떨어진 것처럼 꽃잎 위에 내려앉은 모습은 보는 이에게 이 꽃의 향기까지도 상상하게 만든다. 미술의 언어란 시각의 감각만이 아니라 촉각, 미각 등 우리의 오감이 연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박종필의 개인전이 ‘Between, the fresh-m’이란 간판을 내걸고 3월13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린다. 2019년 이후 6년 만에 갖는 관객과의 만남이다.
수년간 꽃을 소재로 진짜와 가짜의 모호함에 천착한 작가는 더욱 화려한 색과 테크닉으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개념과 형식의 깊이와 확장을 모색한다. 인간의 삶에 관한 은유가 더해진 ‘fresh-m’(2019-2024) 시리즈를 선보인다. 박종필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단어는 ‘between’( … 경계, … 사이)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소재의 반복성은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 형식으로 구현된다. 단순히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각을 통해 대상(꽃)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하나의 질서로 작동한다.

작가는 꽃의 외형보다 생명의 본질, 인간 존재로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사람들이 삶에서 찾기 어렵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나 그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이 들고 지치고 쓰러진다. 우리는 모두 꽃이며 아름다움이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꽃들은 인간을 나타낸 것이며, 그것이 생화이든 조화이든 아름답다. 내 작품은 그래서 더욱 화려한 빛으로 빛난다. 어둠의 요소는 최소화한다. 궁극적으로 작품 안에서 모두가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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