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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샤워실의 바보’에게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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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26 23:32:22 수정 : 2025-03-26 23: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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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오가는 부동산 정책… 정부만 믿었다가는 낭패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지역(토허제) 지정을 해제했다가 한 달여 만에 대상 지역을 되레 확대 지정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셈이다.

익숙한 풍경이다. 정부는 불과 5개월 전에도 똑같은 실기를 범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예고 없이 무주택 서민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가 실수요자들이 반발하자 일주일 만에 철회했다.

김수미 경제부 선임기자

토허제 재지정과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번복 사태는 성급한 정책 추진과 부처 간 엇박자에서 비롯됐다.

서울시가 토허제를 해제하기 전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3차례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은행들이 대출금리는 건드리지 않고 예금금리만 재빠르게 낮췄다는 비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수장들까지 나서자 집값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토허제 해제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세금과 대출, 그리고 심리다. 세금과 대출이 수단이라면 심리는 목적이자 결과다. 정부는 정책을 입안할 때 투자심리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일지 미리 예측해야 하고, 시장 참여자들은 정책의 방향성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생명이다.

일주일, 한 달 만에 정책이 뒤집히고 땜질식 처방으로 뒷수습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애초에 시장을 예측하고 정책을 결정한 게 아니라, 시장 반응을 보고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부동산 실수요자들은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을 믿고 기다렸다가 집값은 뛰고 대출은 막히는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정부가 예고 없이 규제를 풀거나, 강화하거나, 연기하는 변덕을 부릴 때가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서울시가 토허제 기간 만료를 4개월 앞두고 돌연 해제하자 시장 참여자들은 재빨리 ‘집값 급등 열차’에 올라탔다. 그 결과 3월 셋째 주 강남3구 아파트값이 7년여 만에 최고 상승률(한국부동산원·지난 17일 기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이 대출 한도를 조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을 불과 6일 앞두고 돌연 2개월 연기했을 때도 ‘막차 수요’가 몰리며 대출 광풍이 불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며 은행을 압박해 대출 문턱을 올리고, 실수요자들은 금리가 높은 제2 금융권으로 떠밀린다. 불어난 가계부채 부담은 여윳돈 없는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켜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시장에선 이제 “부동산 정책의 최대 위험 요소는 정부 정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적어도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정부 정책을 믿고 기다리기보다는 정부가 어떤 실수를 저지를지 예측하고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를 마냥 따라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수미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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