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프전 MVP’ 안, 담금질 끝 약점 극복
“우리은행에 열세” 평가 보란 듯 뒤집어
박 감독 “안, 정말 열심히 연습” 공 돌려
‘이적생’ 주장 박혜진, 9번째 우승 반지
“책임감 안고 3차전 마지막 역전슛 던져”

박정은(48) 부산 BNK 감독은 아산 우리은행과 2024~2025시즌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챔프전·5전3승제)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BNK는 2년 전(2022~2023시즌) 창단 첫 챔프전에 나섰다가 우리은행한테 3연패를 당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그때의 충격을 떠올리며 지레 겁먹지 않도록 ‘자신 있게 싸워 보라’고 용기를 북돋워 준 것이다. 박 감독의 주문은 효과가 있었다. BNK는 정규리그 1위팀 우리은행보다 열세라는 평가를 뒤집으며 세 경기 만에 챔프전을 끝냈다. 2년 전 수모를 완벽하게 되갚았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BNK 주장 박혜진(35)과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안혜지(28)는 “감독님이 해주신 그 말씀 덕분에 마음 편하게 경기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특히 현역 시절 최고 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박 감독의 조련에 슈팅 능력까지 장착하며 챔프전 MVP까지 거머쥔 안혜지의 감회는 남달랐다. “감독님 말씀이 맞았어요. 걱정할 필요가 없었죠. 부담은 사라졌고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모두 감독님 덕분이죠.” 옆에 있던 박 감독이 손사래를 쳤다. “혜지가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시즌 전 (김한별 은퇴와 진안 이적으로) 빅맨이 없어 스몰 라인업으로 팀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슛이었죠. 이때 혜지가 정말 슛 연습을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렇게 자신감을 찾은 거 같아요.”
사실 안혜지는 슛이 약점이었다. 상대가 BNK를 만나면 안혜지를 상대로 새깅 디펜스(슛이 약한 선수를 외곽에서 수비하지 않는 전술)를 펼칠 정도였다. 리그 최단신(164㎝)인 안혜지는 ‘패스능력만 뛰어난 가드’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혜지는 피나는 노력으로 박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던졌어요(슛 연습을 했어요). 패스 플레이만으론 (팀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팀에서 슛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것만 생각하면서 연습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슈터 박혜진도 “우리 팀 슈터는 혜지”라며 작고 다부진 후배의 눈부신 성장을 높이 평가했다. BNK의 창단 첫 우승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박혜진이다. ‘우승 청부사’인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BNK의 우승은 장담하기 어려웠다. 박혜진은 지난 시즌까지 우리은행에서 뛰며 챔프전 반지를 8개나 수확한 베테랑이다. 이번 챔프전에서도 52-54로 뒤진 3차전 4쿼터 종료 19초를 남기고 역전 3점슛을 꽂아 넣은 게 박혜진이다. 그가 안혜지의 패스를 받아 던진 3점슛이 깨끗하게 림을 가르면서 BNK가 왕좌에 올랐다. “중요한 순간 던진 슛이 안 들어가면 실패한 선수 때문에 졌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럼 후배 선수들이 당연히 부담을 느끼겠죠. (그런 순간에는) 내가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깨져도 내가 깨지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슛을 던집니다.”

이적 후 첫 시즌에 친정팀을 상대로 9번째 우승 반지를 낀 박혜진으로선 묘한 기분이 들 법도 하다. “팀을 옮기면서 새로운 기분이 들었는데, 이렇게 우승을 하니 뭔가 다르게 느껴져요. 아직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님께 연락은 못 드렸어요.”
BNK 우승은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안혜지는 최단신 선수가 챔프전 MVP를 받는 기록을 썼고, 박 감독은 ‘첫 우승 여성 지도자’ 타이틀을 달게 됐다. 박 감독과 박혜진, 안혜지 모두 부산 사하구 동주여중 출신이다. 박 감독이 “농구 명문이죠(학교죠)”라고 하자 두 선수도 맞장구를 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셋은 당분간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그동안 못 잔 잠도 푹 자고, 가족, 친구들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다만 안혜지는 모교로 금의환향하는 계획이 잡혔다. “MVP가 되니까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재능기부라고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후배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좀 사주고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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