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산불 시간당 8.2㎞ ‘사상 초유’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면적 1.5배
지리산 천왕봉 4.5㎞ 부근까지 불길
감시원·주민 숨진채 발견… 28명 사망
1∼4㎜ 비… “골든타임” 진화에 사활
울주는 발생 5일 만에 ‘완전 진화’
안동 등 특별재난지역 추가 선포
영남권 산불이 27일 오후 6시 기준 서울 면적(6만50㏊)의 절반이 넘는 3만8600여㏊를 잿더미로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2만3794㏊)의 1.5배로 역대 최악의 산불이다. 인명 피해도 ‘역대급’이다. 경북 영덕과 청송에서 각각 실종됐던 산불감시원(69)과 80대 주민이 이날 숨진 채 발견되면서 사망자는 28명으로 늘었다. 영남권 산불이 순간 최대풍속 25m가 넘는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침엽수림 등으로 일주일째 확산하면서 지리산국립공원과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 등을 지키기 위한 악전고투도 이어지고 있다. 5㎜ 미만의 비가 내리고 바람 방향이 바뀌기 전인 28일이 주불 진화의 ‘골든타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화세 누그러진 지금이 진화의 골든타임
강한 바람은 영남권 산불 진압의 최대 저해 요인이다. 원명수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위성정보 등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순간 초속 27m의 강풍이 불면서 사상 초유의 확산 속도를 보이고 있다”며 “25일 오후 경북 안동 부근에서 직선거리로 51㎞의 영덕 강구항까지 시간당 8.2㎞ 속도로 12시간 안에 이동했다”고 밝혔다. 원 센터장은 이 같은 속도는 성인이 뛰는 속도(10㎞ 안팎)보다 빠르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지만, 워낙 적은 양이라서 불길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산불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는 1∼4㎜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다만 대기 중에 수증기가 늘어나면서 불똥이 날아가 산불이 번지는 ‘비화’(飛火) 현상 억제에는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비가 그친 후에는 겨울철에 주로 나타나는 ‘서고동저’의 기압 구조를 보이며 북서쪽에서 건조하고 찬 공기가 유입될 전망이다. 그동안 산불을 확산시켰던 강풍이 남서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뀌면 산불의 확산 방향도 달라진다. 북서풍이 불면 경북 북부지역 산불은 의송, 청송, 포항 등 남쪽으로 번질 수 있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오늘 내리는 비의 양과 비가 내린 후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면서 “화세가 다소 누그러진 골든타임에 진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1호 국립공원·천년고찰만은’… 밤샘 사투
경남 산림당국은 26일 밤부터 지리산국립공원에 공중진화대와 특수진화대 등 인력 1200여명과 장비 240대를 투입해 산불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 산세가 워낙 험한 데다 짙게 낀 연무 등으로 소방 헬기가 운용되지 못해 하동권 주불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약 4.5㎞ 떨어진 관음사 인근에서 연기가 포착됐다. 당국은 관음사 주변으로 방화선을 설치하고 밤새 확산 지연제와 물 등을 살포했다.

21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청송 주왕산국립공원까지 번지며 보물 제1570호 보광전 등이 있는 천년고찰 대전사까지 위협하고 있다. 강한 바람을 타고 대전사와 직선거리로 약 4㎞ 떨어진 곳까지 번진 산불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주왕산에 불에 타기 쉬운 소나무 숲이 널찍이 자리하고 있어 당국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22일 발생 이후 엿새 째 이어진 울산 울주군 온양읍 산불 주불은 이날 모두 잡혔다. 울산시는 이날 오후 8시40분 ‘산불 진화 완료’를 선언하고 오후 9시8분부로 공무원 비상동원명령을 해제했다. 앞서 김두겸 울산시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육안으로 관측하는 주불은 100% 잡았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울산 지역에는 이날 4㎜ 정도의 비가 내렸는데 이 비가 대기 중 습도를 높여 진화에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잔불이 여전한 데다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북 무주군 부남면에서도 전날 오후 9시22분 산불이 발생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불은 인근 적상산과 부남면 소재지 부근까지 번져 산림 90㏊와 주택 3채가 전소됐다. 당국은 인근 4개 마을 주민 220여명에게 대피령을 내린 데 이어 인력 70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좀비 산불’에 진화대원들 피로도 누적
진화대원들의 피로도는 계속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조한 날씨와 바람 탓에 불을 끈 곳에서 다시 불이 붙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진화율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울주 산불 진화현장에 동원된 울산시 소속 50대 최모씨는 “3일째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편인데도 산이 가파르고, 끄고 돌아서면 다시 불이 붙어있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지치고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경북 안동시, 청송·영양·영덕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번 산불은 인명 피해뿐 아니라 주택 등 생활 기반 시설 피해가 많은 만큼 조속한 피해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이재민 분들의 불편 해소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산청·울주·의성·하동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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