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동북부 5개 시·군을 초토화한 ‘괴물 산불’이 축구장 6만3245개, 여의도 156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뒤 6일 만에 가까스로 진화됐다. 경남 산청의 주불도 어제 진화돼 다행스럽다. 이번 산불 피해 면적은 역대 최대였던 2000년 강릉·삼척 산불(2만3749㏊)의 2배 규모다. 성묘객 실화로 시작된 이번 산불은 역대 최고치인 시간당 8.2㎞ 속도로 이동하며 30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의성의 천년 고찰 고운사가 전소하는 등 귀중한 국가유산 소실도 적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진화시스템을 대수술해야 한다.
이번 최악의 산불로 국가 재난대응 역량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림청의 초동 대응 실패와 지방자치단체의 늑장 대처, 만성적인 소방헬기와 진화 인력 부족 등 총체적 부실은 뼈아프다. 산불·화재 진압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웠지만, 때마침 내린 1∼3㎜의 가랑비가 진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도 야간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해 최장기간 불타던 중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서야 주불이 진화된 바 있다. 60대 이상인 산불 진화 대원들이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초기 진화에 나서는 현실이다. 산불 대응이 아직 천수답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산불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의 재해’였지만, 동시에 준비가 철저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인간의 재해’이기도 했다. 주로 산간에 사는 노약자들이 피할 새도 없이 목숨을 잃은 건 심각한 문제다. 안동시에선 50대와 70대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청송군에서도 70대가 집에서 숨을 거뒀다. 구형 휴대전화를 쓰는 고령자 중엔 재난문자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상황 전파를 위한 비상연락망이나 유사시 대피 체계를 근본적으로 촘촘하게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산불은 ‘연중화·대형화’ 현상을 보인다. 기후변화로 산불은 더 잦아지고 커질 것이 분명하다. 소각과 화기 소지를 엄금하는 예방책, 대형 헬기 등 장비의 대폭 보강, 진화 인력 확충 및 전문성 강화, 화재를 키우는 침엽수 위주의 식목 탈피, 임도 확대 등 인프라 개선, 인공 강우 연구 등 총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산림청과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지자체로 분산된 산불재난 대응 컨트롤타워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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