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사교육비 조사 ‘정례화’해 관리 필요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A(35)씨는 5세 아이를 위해 매달 25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영어유치원 외에도 주말에 진행하는 영어 학습 캠프와 원어민 수업이 포함된 금액이다. A씨는 “조기 영어 교육이 필수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시작했다”며 “매달 나가는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이 교육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B(41)씨는 만 3세 둘째를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 끝내놔야 중학교부터 다른 과목에 집중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첫째 아이에겐 영어 공부를 입학 바로 직전에 시킨 터라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둘째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려면 아이들 사교육비로만 매달 3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처럼 조기 영어 교육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커지면서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영어학원에 다니기 위한 ‘7세 고시’부터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4세 고시’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교육부 조사 결과 영유아 대상 교육비로 연간 3조원이 쓰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해당 조사에 어린이집 특별활동이나 유치원 방과 후 프로그램 등에 대한 비용은 빠져 ‘반쪽짜리’ 조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영유아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사교육비 조사 추가 대책 제안 토론회’에서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영유아 사교육비 문제를 정확하게 살펴볼 의지가 부족하다”며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를 정례화해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은옥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는 영유아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정책 수립에 필수적인 도구”라면서 “이번 조사는 단 1회의 조사만 이뤄진 데다 표본의 대표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13일 교육부가 공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 따르면, 만 6세 미만 영유아를 둔 가구가 지난해 3분기(7~9월) 지출한 사교육비는 8154억원으로 연간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었는데, 영어유치원에 다닐 경우 월평균 154만5000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이번 시험조사 결과는 국가 미승인 통계 자료다. 정부는 2017년에도 영유아 사교육비를 조사했으나, 이번처럼 시험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선 어린이집 특별활동이나 유치원 특성화 프로그램 등이 조사 항목에서 제외됐다. 현재 사교육비는 영유아 기관 ‘밖’에서 받는 보충 교육비로 정의되면서 기관 내 프로그램 등의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 연구원은 “어린이집 특별활동에 참여하는 영유아는 66.2%, 유치원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유아는 72.5%로, 많은 부모들이 기관 내 활동에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사교육비 집계에서는 제외돼 실제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연구원은 효과적인 사교육 정책 수립을 위해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확한 연구 표집대상 선정이 필요하다”며 “현재 초중고 사교육비 통계의 법적 근거와 운영 체계를 영유아 사교육비에도 통합 적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대욱 경상국립대 교수(유아교육과)도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 방법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립유치원에서 학원을 운영하거나 유치원 옆 건물에서 다른 용도의 학원을 운영하는 등 경계에 있는 곳이 많다”며 “유치원과 학원 공동 운영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영유아 사교육비 문제는 단순한 수치보다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예진 부산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영유아 사교육비 문제는 정보의 불확실성과 정보 부족, 공교육에 대한 신뢰 부족, 주변의 압력 등 누적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결과”라며 “국가가 돌봄의 공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교육의 돌봄 공백을 메우고 국가 책임 돌봄의 질을 강화하는 교육 대개혁과 지역 균형 발전 정책 등 사회 구조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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