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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봄날, 비 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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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6 00:06:55 수정 : 2025-04-16 00: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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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비가 그쳤다. 촉촉한 4월 봄비는 아니지만, 일기예보만큼 태풍급 강풍도 아니어서 활짝 핀 벚꽃도 복사꽃도 명자꽃도 조팝꽃도 나팔수선화도… 모두모두 무사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그들에게 인사를 한다. 잘 견뎌주었다고, 고맙다고. 그러곤 오랜만에 성시경의 ‘비 개인 오후’를 듣는다. 이곳에선 너희들이 내 연인이야. 너희들은 내가 눈을 뜬 채로 꾸는 꿈들이야. 해가 바뀌기도 전에 너희들을 향해 꾸는 꿈. 봄날의 황홀한 꿈들이야. 그러니 좀 더 너희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어. 내 눈과 내 귀와 내 가슴이 너희들로 가득 차 흘러넘칠 때까지.

노래가 끝날 즈음,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함께 지내는 소설가 김혜나씨가 책 한 권을 건넨다. 그녀의 장편소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안 그래도 그녀의 소설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정말 고맙다. 그녀는 이곳 여성 작가 중엔 가장 어리지만, 이 책에 실린 ‘작가의 말’처럼 이곳에서도 매일매일 요가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이는 작가다. 쉼 없이 삶을, 문학을 살고, 살아내고자 하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작가다. ‘소중한 인연, 평안한 마음’이라는 친필 사인이 그녀의 곡진한 인장 같아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이곳에서의 생활도 한 달 반이 지나 곧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곳 ‘글을낳는집’에 와 계획만큼 창작에 집중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방향과 창작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었고, 도시 생활에서 잃고 있던 탁 트인 시야와 마음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고, 게다가 이곳에서 먹은 봄나물과 쌈만 해도 스무 종류가 훨씬 넘을 정도로 싱싱하고 정성스러운 밥상과 대문을 나서면 어딜 가나 졸졸 흐르는 맑은 개천과 찰랑찰랑 웃는 햇볕과 그 햇살에 아름다운 윤슬을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저수지와 시골 밤이 주는 엄청난 적막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그 모든 걸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산, 산, 산, 전라도의 산들. 이 모든 걸 고스란히 내 눈과 귀, 가슴속에 담아 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집 한 권은 쓴 것과 같으니…. 페루난두 페소아의 시구처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음 놓고,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멈추고, 또 쏘다닌다. 이런 곳에서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이니까.

대신 나는 사랑에 빠진다. 오랜만에 깊고 깊은 사랑에 빠진다. 담양, 광주, 나주, 화순 등지를 돌며 그 땅의 기운과 그 땅의 향기와 내력, 그 땅의 설움과 희망을 따라가고 따라간다.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화사한 봄꽃들과 싱그러운 연두색 새순들을 한없이 해바라기하고, 해바라기하며!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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