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정치인들은 살길 찾기 바빠
국민 삶과 직결된 대권주자 정책
촘촘한 검증으로 선택 잣대 제시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며, ‘제2의 IMF 사태’를 우려하는 이들이 적잖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이 몰고 온 불안감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산출하는 정치 불확실성 지수는 13일 기준 2.5로, 계엄 선포 전(0.4~0.5)이나 2월 하순(1.4)보다 훨씬 높다. 20여년 전,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나고 대량 실업으로 스산했던 악몽이 다시 떠올라 몸서리를 치게 한다.
외환위기를 떠올릴 만큼 한국 경제는 지금 바람 앞의 등불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며 환율이 요동친다. 주식과 코인 시장의 변동성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많다. 기업들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시기보다 더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총체적 경제 난국이지만 여의도는 별다른 위기감이 없어 보인다. 자영업자와 기업은 피가 마르는데,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처리조차 미적거리고 있다. 정부가 15일 발표한 추경안을 보면 재해·재난 대응에 3조여원,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에 4조여원,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에 4조여원 등 당장 시급한 분야에 대한 예산이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2당인 국민의힘은 이날 경제 분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불황에 뒷북 추경”이라거나 “민주 예비비 삭감 탓”이라며 입씨름만 주고받았다.
본업인 입법과 예산 심사는 뒷전이지만 권력의 풍향계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기 대선 레이스에 들어가자 어느 캠프로 갈아탈지를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다.
민주당 의원들은 차기 권력이 유력한 이재명 전 대표의 눈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아직 얼굴조차 뚜렷하지 않은 잠룡의 향방을 점치느라 분주하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승기를 쥔 민주당은 다가올 ‘그들만의 미래’에 도취된 듯하다. 현재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조치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수세에 몰린 국민의힘은 오로지 ‘반이재명’ 기치만 내걸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며, 불확실성에는 아예 무관심한 듯한 태도다. 양쪽 모두 중도적 민생정책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자기 진영 치어리더 역할에 열중하고 있다.
더욱이, 중립적 위치에서 선거를 관리하며 불확실성을 덜어줘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자신의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모호한 태도를 반복하며 혼선만 키우고 있다. “경제를 망치는 가장 빠른 길은 무능한 정치”라던 밀턴 프리드먼의 경구가 지금 딱 우리 정치를 내다본 듯 하다.
선거는 바로 이런 순간, 정치적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민생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고안된 민주적 제도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실현 가능한 민생 공약이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
역대 대선의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김영삼의 ‘신경제’, 노무현의 균형발전, 이명박의 ‘747 공약’,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 윤석열의 규제 완화까지.
그동안 거창한 슬로건이 선거 때마다 쏟아졌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냉정히 말해, 이번에도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누가 실현 가능한 민생 공약을 만들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세계일보는 그동안 대선과 총선에서 매니페스토 보도를 통해 선거 공약을 검증해왔다. 이번 6·3 대선에서도 ‘매니페스토 3.0’으로 한층 진화된 기획을 다음 주부터 선보인다. 말의 장식이 아닌,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구체성, 지속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정치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인 실행 여부를 따지는 ‘사실 기반 검증 저널리즘’을 실천할 계획이다. 대선은 결국 ‘밥상’ 위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권자의 차례다. 눈을 부릅뜨고 정략에 빠져 불확실성을 키운 자들을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정파적 득실이 아니라, 민생 공약을 우선순위에 두는 후보가 늘어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알렉시 드 토크빌)는 격언을 곱씹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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